솔론의 인생론, feat 크로이소스와 키루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좀 길지만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서 대부분 그대로 옮겼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35세로 왕위에 올랐다. 크로이소스는 주변의 민족들을 정복하고 번영의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리스의 현자들이 모두 번갈아 찾아왔다. 유명한 아테네 사람 솔론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왕궁에서 크로이소스에게 환대를 받고 3일인가 4일째에, 크로이소스의 명령을 받은 시종이 그를 보물 창고로 안내하여 호화로운 재보를 모두 그에게 보였다. 솔론이 이 모든 것을 구경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질 때쯤, 왕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 그대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대는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
크로이소스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솔론은 왕에게 아부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대로 대답하였다.
"왕이시요, 아테네의 탤로스가 그러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외의 대답에 놀란 크로이소스는 벼르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그 텔로스라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솔론이 대답하였다.
"텔로스는 우선, 번영한 나라에서 태어나 훌륭하고 좋은 아이들을 두었습니다. 또 그 아이들에게는 모두 아이들이 생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자면 생활도 유복했지만, 그 임종이 또한 훌륭했습니다. 즉, 아테네가 이웃나라와 엘레우시스에서 싸웠을 때, 텔로스는 아군을 구원하러 가서 적을 패주 시킨 뒤 훌륭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아테네는 국비를 가지고 그의 시신을 그가 전몰한 곳에 매장하여 크게 그 명예를 기렸습니다."
솔론이 이처럼 텔로스가 행복했다는 까닭을 누누이 말하자, 크로이소스는 더욱더 서슬이 대단해져서 자기가 적어도 두 번째는 될 것이라 생각하고 텔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솔론은 대답하였다.
"그것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아르고스 태생으로 생활도 자유롭고 체력도 뛰어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체육 경기에서 우승했고,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아르고스에서 헤라 여신의 제례가 있었을 때, 그들의 어머니를 어떻게 해서든 우마차로 신전까지 모시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소가 밭일에 나가 있어서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에 쫓겨, 두 청년이 소 대신 멍에를 쓰고 수레에 어머니를 태워 (약 9.7킬로미터)를 달려서 신전에 도착했습니다. 제례에 모인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 일을 완수한 형제는 잠시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야말로 훌륭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신은 이 실례로 인간에게 있어 삶보다 오히려 죽음이 고귀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생략)
솔론이 이와 같이 행복의 두 번째 자리를 이 두 형제에 주자 크로이소스는 화를 내며 말하였다.
"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는 나를 그와 같은 서민들만도 못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소이다. 나의 이 행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거요?"
솔론이 대답하였다.
"크로이소스 왕이시여, 왕께서는 저에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물어보고 계십니다. 저는 신이란 질투심이 많고 인간을 난처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아야 하고 겪고 싶지 않은 일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의 일생을 가령 70년이라고 하며, 70년을 날수로 고치면 윤달은 없다 치고라도 2만 5,200일이 됩니다 만약에 사계절의 추이를 달력에 맞추기 위하여 1년 걸러 한 달을 연장한다면 70년 동안에 35개월의 윤달이 들어가게 되고, 이것을 날로 환산하면 1,050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70년, 합계 2만 6250일 중, 하루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크로이소스 왕이시요, 인간의 생애는 모두가 우연입니다.
왕께서 막대한 부를 가지시고, 많은 백성을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물으신 일에 대해서,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치셨다는 것을 아실 때까지는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썩을 정도로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많은가 하며, 재산은 없어도 좋은 운을 만난 사람 또한 많습니다. 매우 부유하지만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행운이 있는 사람에게 비해서 딱 두 가지 이점을 갖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운이 있는 사람은 불행한 부자보다도 많은 점에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전자는 욕망을 충족하거나 들이닥친 큰 재난을 견디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쪽보다 유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운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에는 없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욕망을 채우거나 재난을 견디는 점에서는 부자와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그러한 일은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몸에 결함이 없고, 병을 모르고 불행한 일도 당하지 않고 자식 복이 있고, 모습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게다가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왕께서 바라시는 인물, 즉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나라의 경우도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진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저것은 있지만 이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그 실정이며, 가장 많이 있는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인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개개인이 완전히 자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없는 법인데, 될 수 있는 대로 부족한 것이 적은 상태로 지낼 수가 있고, 게다가 보람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왕이시여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마땅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서나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그 결말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에 의해 울타리 너머로 행복을 잠깐 보았으나,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솔론의 이 이야기가 크로이소스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현재 있는 복을 버리고 모든 일의 결말을 보라고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바보라고 생각한 크로이소스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솔론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생략)
크로이소스 재위 14년, 포위공격 14일 만에 키루스의 페르시아 군은 사르데스를 점령하고, 크로이소스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키루스는 거대한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게 하고, 족가를 채운 크로이소스를 14명의 리디아 아이들과 함께 그 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장작 위에 선 크로이소는 이토록 비운에 직면하면서도, 문득 솔론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얼마나 영감에 찬 말인가!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이제까지 한마디도 않고 침묵을 지키던 크로이소스가 깊은 한숨을 쉬며 슬픈 목소리로 세 차례나 솔론의 이름을 불렸다. 키루스는 그것을 듣고 통역에게, 크로이소스가 그토록 이름을 부르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냐고 묻게 하였다. 통역이 곁으로 가서 묻자 크로이소는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으나 대답을 강요당하자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왕이 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천만금도 아깝지 않다고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다."
크로이소스는 이전에 아테네 사람 솔론이 자기에게로 와서, 자기의 재물을 모두 보고도 이러이러한 말을 하면서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 신상은 솔론이 한 말 그대로 되었다는 것, 솔론은 자신의 일을 말했다고 하느니보다는 일반적인 인간사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특히 자기 멋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였다.
크로이소스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장작에 불이 붙여져 가장자리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키루스는 통역으로부터 크로이소스가 한 말을 듣고 마음이 변하였다. 자기도 같은 인간이면서 한때는 자기 못지않게 부귀영화를 누린 또 한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려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응보를 두려워하고 인간 세상의 무상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는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꺼서, 크로이소스와 아이들을 내려오도록 명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