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피아노와 트럼펫, 그리고 이웃들: 진정한 문화 강국이란 무엇인가

낙타 2026. 1. 26. 14:03

올해 여든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이 4월3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든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백건우 선생은 오랜 기간 파리(정확히는 파리 근교 뱅센)의 아파트에서 생활했습니다. 음악가에게 연습실이란 전쟁터와 같은데, 그는 별도의 연습실 없이 집에서 매일 건반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프로 연주자의 세계에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매일의 연습은 숙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몇 시간씩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면 아파트 이웃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보통이라면 층간 소음 분쟁이 일어날 법도 한데,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파리의 이웃들은 달랐습니다.

"아래층 사람이 그러더군요. 평생 클래식 FM을 즐겨 듣던 어머니가 병상에 누운 마지막 몇 달간, 라디오 대신 위층에서 들려오는 제 피아노 소리를 듣다가 행복하게 떠나셨다고요.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도 막 아이를 가졌는데, 태교에 피아노 소리가 정말 좋다고 해줬습니다."

소음을 '소음'이 아닌 '삶을 위로하는 음악'으로 받아들인 이웃들의 마음이 있었기에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가 존재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백건우│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L.v.Beethoven, Piano Sonata No. 8 Op.13 Pathétique) Pf.GunWoo Paik

#클래식은티예무 #TV예술무대 #백건우 #MBCtvartshow피아노- 백건우 (KunWoo Paik, Piano)♪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 (L.v.Beethoven,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Op.13 'Pathé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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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아내이자 대배우인 故 윤정희 씨를 두고, 알츠하이머 투병 중 방치되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 고등법원과 한국 법원 모두 딸 백진희 씨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하며 논란은 법적으로 종결되었지요. 결국 지난 2023년 윤정희 선생은 파리에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타인의 가정사, 특히 긴 병수발의 고단함과 복잡한 속사정을 제 3자가 섣불리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백건우의 일화를 보다 보니, 1920년대 재즈 시대를 풍미했던 또 다른 천재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바로 '재즈의 노발리스(독일 낭만주의 시인)'라 불렸던 전설적인 코넷 연주자,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입니다.

요아힘 E. 베렌트의 저서 《재즈북》에는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바이더벡은 생의 마지막 몇 주를 뉴욕 퀸스의 한 아파트에서 친구인 베이시스트 조지 크래슬로와 함께 보냈습니다. 그는 새벽 서너 시가 되면 일어나 코넷을 불곤 했습니다. 보통의 아파트라면 경찰이 출동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웃들은 항의 대신 크래슬로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제발 그에게 아무 말 하지 마세요. 그의 연주가 멈추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당시 바이더벡은 알코올 중독과 폐렴으로 몸이 망가져 가고 있었지만, 그 새벽의 나팔 소리는 이웃들에게 소음이 아닌 영혼의 울림으로 닿았던 모양입니다.

In a Mist

Provided to YouTube by Columbia Jazz MasterpiecesIn a Mist · Bix BeiderbeckeBix Beiderbecke, Volume I: Singin' The Blues℗ Originally Released 1927. All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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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어머니의 마지막 자장가로 삼은 파리의 이웃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병든 천재의 코넷 소리를 묵묵히 사랑해 준 뉴욕의 이웃들.

우리는 흔히 영화가 흥행하고 K-Pop이 전 세계 차트를 석권해야 '문화 강국'이라고 말합니다. 수출액과 트로피의 숫자로 문화를 재단하곤 하지요. 하지만 진정한 문화의 힘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술을 특정한 무대 위에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서툰 연습이나 고뇌에 찬 연주가 벽을 타고 넘어올 때, 그것을 일상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향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문화를 일상에서 얼마나 너그럽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를 가늠하는 진짜 척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