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남해의 흔들리는 마음
with gemini
“성진 씨는 참 속이 깊어.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딨어.”
부산 송정의 한 한적한 실내포차, 눅눅한 바닷바람을 뚫고 풍겨오는 기름진 전 냄새 사이로 반찬가게 주인 정경패가 붉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올해로 쉰다섯이 된 오성진은 개인 사업이랍시고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처지였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폼 나게 살고 싶다는 대장부의 헛바람이 가득했다. 자식들은 다 커서 제 살길 찾아 떠났고, 아내와는 서류만 유지한 채 각방을 쓴 지 오래였다. 외로움과 공허함이 침전물처럼 쌓여가던 쉰다섯의 여름, 성진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동네 여인들의 팍팍한 삶에 참견하기 시작하며 기묘한 꿈같은 나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2장: 여덟 갈래의 살 내음과 애환
성진이 베푼 어설픈 온정과 영웅심리는 이내 뜨거운 육체적 위안과 처절한 금전적 소모로 이어졌다.
첫 시작인 정경패는 오랜 시간 뇌졸중으로 누워있는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반찬을 만들던 여자였다. 성진이 단골을 자처하며 가게의 무거운 짐을 날라주고 외로움을 들어주자, 그녀는 어느 날 밤 불 꺼진 반찬가게 주방에서 성진의 목을 안았다. 땀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뒤섞인 밀폐된 공간에서, 경패는 억눌렸던 욕망을 터뜨리며 성진의 품고 있던 남성성을 거칠게 깨웠다. 성진은 그녀에게 힘이 되고 싶어 밀린 가게 월세와 신형 믹서기 대금 수백만 원을 카드로 긁었다.
성진의 아픈 홀어머니를 돌봐주던 요양보호사 이소화는 이혼 후 아들의 양육비를 대느라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주말 밤, 성진은 피로에 지친 그녀를 교외의 모텔로 데려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주었다. 거품 속에서 드러난 그녀의 매끄러우면서도 탄력 잃은 몸을 보며 성진은 묘한 애틋함을 느꼈고, 그날 밤 콘돔도 없이 서둘러 서로의 체온을 탐닉했다. 소화는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고, 성진은 그녀의 허리 디스크 수술비 명목으로 마이너스 통장에서 수백만 원을 인출해 쥐여주었다.
성진의 지갑과 정력은 여섯 명의 여인들이 더 가세하며 쉴 틈 없이 거덜 나기 시작했다.
고향 후배이자 작은 동네 미용실 원장인 미혼의 진채봉은 오랜만에 찾아온 첫사랑 성진의 앞에서 수줍은 처녀처럼 굴었다. 영업이 끝난 미용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은은한 샴푸 향 속에서 나누었던 농밀한 은밀함은 성진에게 청춘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성진은 그녀의 기를 살려주겠다며 미용실 인테리어를 최신식으로 바꾸는 데 수천만 원을 보탰다.
마트 계산원이자 야간 편의점 알바를 뛰는 미혼모 가춘운은 어린 딸의 학원비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좁은 원룸에서 아이가 잠든 틈을 타 화장실 불빛 아래서 조심스럽게 나누었던 숨죽인 정사는 짜릿하면서도 애처로웠다. 성진은 밤 알바를 그만두게 하겠다며 몇 달 치 생활비를 현금으로 뭉텅이로 건넜다.
시장 바닥에서 생닭을 튀기는 돌싱녀 계섬월은 전남편의 도박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린 채, 끈적한 기름때가 묻은 탁자 위에서 나누었던 화끈하고 노련한 잠자리는 성진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성진은 그녀를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카드론을 받아 사채 이자 수백만 원을 대신 갚아주었다.
탑차를 몰며 동네를 누비는 미혼의 택배 기사 적경홍은 털털한 여장부였다. 모텔 침대 위에서조차 성진을 리드하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그녀의 활력에 성진은 정신을 못 차렸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는 그녀의 말에 성진은 탑차 수리비와 고가의 관절 영양제를 풀세트로 결제했다.
문화센터 가구 공방의 보조 강사인 유부녀 심요연은 남편의 의처증과 폭언에 시달려 늘 몸에 멍자국이 가득했다. 성진은 공방 구석, 나무 향이 가득한 작업대 위에서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눈물의 정사를 나누었다. 그녀를 지옥 같은 집구석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성진은 개인 공방 보증금을 대출받아 바쳤다.
마지막으로 배달 라이더를 하며 미용 학원을 다니는 막내 미혼녀 백능파는 싹싹하고 영특했다. 삼십대 초반의 팽팽한 피부와 젊은 육체는 오십대 성진에게 최음제와 같았다. 좁은 자취방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구석에 던져둔 채 나누었던 격렬한 밤 끝에, 능파는 숍을 차리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고 성진은 "내가 네 키다리 아저씨"라며 미용 학원 전문 과정 등록비와 재료 세트를 풀할부로 긁어주었다.
제3장: 잔고(殘高)라는 이름의 회청색 지팡이
어느 주말 밤, 성진은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해운대의 한 조개구이집 방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불판 위에서 조개가 입을 벌리며 지글지글 익어갔고, 소맥 잔이 쉴 새 없이 돌았다. 경패가 안주를 입에 넣어주면 소화가 성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고, 춘운과 능파는 성진의 허벅지를 쓸어내리며 애교를 부렸다. 섬월과 경홍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풀려버린 눈으로 여인들의 굴곡진 몸매와 만족스러운 얼굴을 둘러보던 성진은 꽐라가 된 목소리로 잔을 높이 들었다.
“걱정들 마소! 내가 이 오성진이가!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마십시다!”
여인들이 "오빠 최고!", "사장님 멋져요!"를 연호하며 가슴을 밀착해 오던 바로 그 순간, 성진의 지포어 골프바지 주머니 속에서 사정없는 진동과 함께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카톡—! 띠링—! 띠링—!
마치 육관대사가 지팡이로 돌난간을 콰앙, 하고 내리친 것 같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성진은 흐려진 눈으로 화면을 켰다.
[카카오뱅크] 오성진님, 잔고 부족으로 소상공인 대출 및 햇살론 원리금 2,450,000원이 미출금되었습니다. (연체 등록 안내)
[토스카드] 승인거절: 한도초과 / 조개구이 480,000원
[제일저축은행] 카드론 단기카드대출 연체로 임의조기채권추심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 한도 초과……? 대출 이자가 왜……?”
성진이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기괴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제4장: 번쩍 눈을 뜨니 850원
성진이 비명을 지르며 번쩍 눈을 떴다.
해운대 조개구이집의 왁자지껄함은 간데없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눅눅한 장마철 물비린내가 나는 자기 방의 얼룩진 천장이었다. 선풍기는 덜덜 소리를 내며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고, 아래도리를 대충 입고 잤인지 사타구니 주변이 끈적하고 찝찝했다.
성진은 등 줄기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꿈이었나……? 다 꿈이었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 머리맡에 뒹굴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카카오뱅크와 저축은행에서 날아온 연체 독촉 문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화면을 넘겨 계좌 잔고를 확인했다.
[출금가능잔액: 850원]
그것은 밤의 유령 같은 꿈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인생 보상받겠다”며 소모임과 마트를 전전하며 자신의 분수에 넘치게 카드론을 당기고 대출을 영끌해 바쳤던 성진의 방탕하고 대책 없는 ‘현실’의 성적표였다. 여인들이 바친 뜨거운 육체와 위안의 대가는 처참한 금융 치료로 돌아와 그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었다.
성진은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향기롭던 여인들의 향기도, 왕이라도 된 듯했던 대장부의 호기도 결국 통장 잔고가 받쳐줄 때나 존재하던 구름 같은 신기루였다.
인간의 정욕은 순간의 구름과 같고, 다가올 카드 명세서는 서리보다 매서운 것을.
성진은 단칸방 구석에서 텅 빈 지갑을 움켜쥐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인생무상이라더니…… 진정한 깨달음은 불도가 아니라 통장잔고에서 오는구나.”
그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내일 아침 인력사무소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알람을 맞추었다. 그렇게 쉰다섯 중년 남성의 길고 화려했던 꿈은 단돈 850원을 남기고 완전히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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