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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웃음 속에 감추어진 피눈물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잇몸과 으깨어진 코, 너는 이제 가면을 쓸 것이며, 영원히 웃으리라.어릴 때 시장에 가면 장애인들이 많았다. 구걸을 하고 행상을 하는 그 사람들이 왠지 무서웠다. 일부러 몸을 망가뜨려서 구걸을 한다는 둥, 저렇게 만들어서 앵벌이를 시키는 조직이 있다는 둥. 출처도 목적지도 없는 소문들이 바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다.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를 펼치자마자 그 소문들이 떠올랐다. 위고는 그 소문의 프랑스판을 1869년에 써놨다. 콤프라치코스. 아이를 사서 신체를 기형으로 만들어 귀족의 구경거리로 파는 집단이다. 위고는 갤리선의 노예나 도형수들에게 행해지는 신체적인 훼손과 아이들을 사고파는 폐해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완성했다.주인공 그윈플렌은 두 살 때 콤프라치코스..

2026.04.22

편지 2. 편지가 만든 이야기들, 그리고 작별

하늘을 가로질러편지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기차가 도시와 도시를 잇고, 배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면서 편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가 등장했다. 기차도 배도 닿지 못하는 곳까지, 하늘을 가로질러 편지를 전하는 시대가 열렸다.초기의 비행기는 아름답기보다 위태로웠다. 목재와 천으로 얼기설기 엮인 기체는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렸고, 조종사는 오직 감각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승객을 태우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날개 달린 관짝에 자발적으로 올라탈 일반인은 없었으므로. 그렇게 찾아낸 사업이 편지를 나르는 일이었다. 항공우편 조종사들은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폭풍과 암흑 속을 날았다.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도 그 하늘 위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라테코에르 사의 조종사로 툴루즈에서 아..

2026.04.15

편지 1. 편지를 쓴 사람들

고흐와 테오, 그리고 숨은 주인공이중섭을 '한국의 고흐'라고 한다. 미술사에서의 위치나 삶의 궤적이 닮았기도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편지를 많이 썼다는 것.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고흐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도 따라갔다. 그 편지들을 세상에 꺼낸 건 테오의 아내였다.생각해 보면 고흐는 좋은 동생을 두었을 뿐 아니라 동생의 아내 덕도 많이 봤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형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걸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른 척했는지 — 그 때문에 부부싸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 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편지를 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가치를 알아보고 출판한 건 그녀였다. 몰인정한 사람이었다면 난로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고흐의 내면을 들..

2026.04.14

부녀대작

초봄의 기운이 완연한 4월의 월요일 아침입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 딸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딸 : 빠. 잠깐만.빠 : 왜?딸 : 나 왜 이렇게 예쁘?빠 : ... 내가 낳았지.딸 : ...빠 : 아버지 어머니 예쁘게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봐.딸 :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아~빠 : 태도가 맘에 안드네?딸 : ㅎㅎㅎ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딸이 다시 말을 겁니다.딸 : 옷 이쁘지?빠 : 응. 힙하네?딸 : 오~. 아빠가 힙을 알아? 엉덩이 말고.빠 : 월요일 아침부터 불쾌한데?딸 : ㅋㅋㅋ어느덧 저녁이 되고 치맥을 즐기며 대화는 깊어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 질문이 빠질 수 없습니다.딸 : 아빠 T야?빠 : (사람의 성격은 단순하지 않고 다층적인 거란다... ..

2026.03.13

[단상]가면을 벗고 나를 만나는 연습

어릴 적 나는 숫기가 없었고 사람 대하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지금은 사회생활을 제법 잘하는 편이다. 오랜 시간 세상 풍파에 깎여 둥글게 변한 모양이다. 실제 기분과 상관없이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지낸다. 명랑하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적 생존을 위한 나의 적응 기제였다. 하지만 밝은 모습과 내면 사이의 괴리감은 나를 지치게 했다. 내가 쓴 명랑한 가면은 페르소나다. 사회적 요구에 맞춘 가면과 참 자기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에너지는 고갈된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느낌은 오히려 깊은 고립감을 불러왔다.타인에게 늘 좋은 모습만 보이려는 욕구는 버림받지 않으려는 두려움의 발현일지 모른다. 나는 타인의 일에 마음의 벽을 치며 나를 보호해왔다. 사회적 가면을 유지하느라 쏟은 에너지가 너무 커서 선택적 집중을..

2026.03.03

(길에서 만나다)송정해수욕장의 섬집 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최근 부산 송정 해수욕장의 죽도 입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념비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습니다. 2025년에 세워진 동요 ‘섬집 아기’의 노래비더군요.아마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이나 모차르트의 자장가와 더불어 부모님이 아이를 재울 때 가장 즐겨 부르는 국민 자장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이 노래는 한국전쟁 당시 초등학..

2026.02.24

AI시대의 글쓰기. 과연 내가 쓴 글일까?

AI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으로 영상을 만들고 작곡을 하며 코딩까지 하는 세상입니다. 저는 다른 재주는 없어서 글쓰기에만 살짝 AI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어느 날 칼 젠킨스의 팔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천재가 그토록 많은 음악을 만들어냈는데, 아직도 새로운 멜로디가 나올 구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이제는 새로운 창작의 샘이 마를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AI에게 제 생각을 입력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사실 확인을 하고 내용을 추가해 줘 내가 음악에 대해서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음악은. 적어도 현대의 체계적인 음악은 12 ..

2026.02.21

12개의 음표가 만드는 무한한 우주, 그리고 칼 젠킨스의 팔라디오

우리가 듣는 현대의 모든 음악은 사실 단 12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어도 체계화된 음악은 12음계 안에서 모든 멜로디가 탄생하고 기록되죠. 그래서 저작권을 가릴 때도 악보 그 자체보다 이 12음의 이어짐을 핵심으로 봅니다. 칼 젠킨스의 팔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Sir Karl Jenkins – Palladio, conducted by Andrzej Kucybałainfo https://gr.afit.plAleksandra Domarecka, Magdalena Kruczała – violinAndrzej Kucybała – conductorStanisław Moniuszko School of Music Orchestra in Bielsko ...www.youtube.c..

2026.02.19

[단상] 예술성과 인간성은 별개일까요? 인간성 나쁜 예술가들

백건우 씨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김에 몇 자 적어봅니다. 이렇게 필(feel) 받을 때가 있잖아요. ​[단상] 피아노와 트럼펫, 그리고 이웃들: 진정한 문화 강국이란 무엇인가올해 여든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이 4월3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든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백건우 선생은 오랜 기간 파리(dnlsoli.tistory.com얼마 전 백건우 씨가 치매 걸린 아내 윤정희 씨를 방치했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저는 처음에 딸이 아버지를 고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딸은 아버지 편에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있었고, 오히려 윤정희 씨의 동생들(처가 식구들)이 비난한 거더군요. 결국 프랑스 법원에서도 백건우 씨 손을 들어줬고요.참, 남의 가정..

2026.01.28

​[단상] 피아노와 트럼펫, 그리고 이웃들: 진정한 문화 강국이란 무엇인가

올해 여든살의 피아니스트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이 4월3일 부산시민회관에서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든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백건우 선생은 오랜 기간 파리(정확히는 파리 근교 뱅센)의 아파트에서 생활했습니다. 음악가에게 연습실이란 전쟁터와 같은데, 그는 별도의 연습실 없이 집에서 매일 건반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프로 연주자의 세계에는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안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매일의 연습은 숙명과도 같습니다.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몇 시간씩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면 아파트 이웃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보통이라면 층간 소음 분쟁이 일어날 법도 한데,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파리의 이웃들은 달랐습니다."..

2026.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