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rica is Back - Abel selaocoe의 음악 세계.

낙타 2026. 7. 28. 14:41

아프리카 문화에서 음악은 박물관에 박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유이자, 소통이며, 조상들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저는 첼로라는 악기로 그 통로를 열 뿐입니다.


음악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호흡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오랜 세월 동안 서구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는 악보라는 엄격한 틀 안에서 완벽한 재현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 견고한 클래식의 벽을 깨고, 음악의 가장 원초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흐름이 있다. 그 중심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첼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작곡가인 아벨 셀라오코에(Abel Selaocoe)가 서 있다.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아프리카 대륙의 방대하고 풍부한 음악적 유산을 이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현대 음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벨 셀라우코에는 남아공 세보켕 출신이다. 요하네스버그 남쪽의 흑인 타운십. 첼로를 살 돈이 없어서 종이에 현을 그려 가슴에 붙이고 운지를 연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 완벽한 서사라 의심이 갈 정도다.

형을 따라 소웨토의 주말 음악학교에 다니다가 세인트존스 칼리지 장학생이 됐고, 이후 맨체스터 왕립북부음악원으로 건너가 2018년에 국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흔한 성공담처럼 들린다. 클래식 음악원을 나온 유색인종 연주자, 서구가 좋아하는 서사.

그런데 그는 바흐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부른다. 세소토어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목에서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낸다. 움응고콜로 (umngqokolo)라는 코사족의 오버톤 창법이다. 첼로를 활로 켜면서 동시에 목으로 화성을 쌓는다. 한 사람이 반주와 노래를 동시에 하는 셈인데, 이걸 무대에서 즉흥으로 한다.

그는 이걸 "두 세계가 같은 공간에 앉아야 한다"라고 표현했다. 바흐 옆에 오버톤을, 서양의 사라반드 옆에 아프리카의 창법을. 병치가 아니라 동거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설명하거나 이국적으로 장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둘 다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군다.

Where is Home

2022년 데뷔 앨범 《Where Is Home (Hae Ke Kae)》는 제목부터 영어와 세소토어를 나란히 쓴다. 세소토어(Sesotho)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 중 하나다. 이 앨범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개인이 안식을 찾고 영감을 얻는 다양한 형태의 '집'을 탐구하는 음악적 여정을 담고 있다.

Abel Selaocoe & Yo-Yo Ma record Ibuyile I'Africa / Africa is Back

Cellist, singer, and composer Abel Selaocoe joins with the legendar...

www.youtube.com

첫 트랙이 그 자체로 선언문이다. "Ibuyile I'Africa (아프리카가 돌아왔다)". 이어서 바흐 첼로 모음곡 사라반드가 지나가고, 자작곡 "Ka Bohaleng (칼날 위에서)"가 이어진다. 이 곡은 "칼날의 예리한 쪽을 쥔" 강인한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그는 설명한 적이 있다. 이 앨범에 요요마가 첼로로, 코라 연주자 카디알리 쿠야테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신인 데뷔 앨범에 요요마를 게스트로 불렀으니 이미 그가 어떤 궤도에 올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앨범으로 2023년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기악 연주자상을 받았다.

Abel Selaocoe – ‘Ka Bohaleng’ | Classic FM

The brilliant South African cellist Abel Selaocoe performs ‘Ka Boha...

www.youtube.com

2025년 두 번째 앨범 《Hymns of Bantu》는 한 발 더 나아가 서구식 4성 화성이 들어오기 전 남아공 음악의 선법과 배음 체계로 돌아간다. 대표곡 "Tsohle Tsohle"와 "Emmanuele"는 허밍에서 챈트로, 챈트에서 클릭음과 오버톤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프랑스 작곡가 마랭 마레가 300년 전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해 쓴 "Les Voix Humaines"를 즉흥으로 재해석한 트랙도 있는데, 그는 이 옛 곡에서 남아공의 다성 창법 움응고콜로와 닮은 구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진보가 아니라 귀환. 다만 그 귀환에 요요마도 있고 첼로 콘체르토도 있다는 게 이 사람의 특이한 점이다.

연주 이력도 이 궤적을 그대로 따라간다. 각종 수상 경력은 물론이고 카네기홀,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 에든버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다. 자기 이름의 트리오 체사바와 아프리카 타악기·베이스가 붙는 반투 앙상블까지 조직하여 왕성하게 연주 활동 중이다.

Africa is Back

아벨 셀라오코에의 음악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그의 아프리카적 배경이다. 그에게 아프리카 음악은 클래식에 곁들인 이국적인 양념이 아니라, 그의 몸과 영혼에 새겨진 음악적 모국어다.

흔히 '아프리카 음악'이라고 하면 단순한 타악기 리듬이나 원시적인 외침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거대한 오해다. 아프리카는 수천 개의 부족과 수십 개의 국가가 저마다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음악적 모자이크 대륙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음악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54개국, 수천 개의 부족, 그만큼의 리듬 체계가 있다.

서아프리카에는 그리오라는 세습 음악가 가문이 있다. 이들이 뜯는 코라는 박을 반으로 잘라 만든 21현 하프인데, 마을의 족보와 역사를 노래로 외워 나르는 게 이 사람들의 본업이다. 악기 하나가 도서관인 셈이다.

남아공에는 이시카타미야가 있다. 줄루족 광부들이 밤에 숙소 경비를 피해 발소리를 죽이며(줄루어로 '카타마') 부르던 무반주 합창인데,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가 이걸로 세계 무대에 올라갔다. 셀라우코에 한 사람 안에도 세소토어, 코사족 창법, 트리오 체사바가 다루는 범아프리카 레퍼토리가 뒤섞여 있다.

그런데도 몇 가지는 대륙을 가로질러 반복된다. 폴리리듬 — 한 사람이 3박을 치는 동안 다른 사람이 4박을 얹는 식으로, 서로 다른 리듬이 동시에 굴러간다. 목소리가 악기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 음악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 사냥, 장례, 축제를 지탱하는 도구였다는 것. 부름이 있으면 응답이 있어야 한다. 연주자와 청중의 경계가 서양 콘서트홀만큼 단단하지 않다.

셀라우코에가 오케스트라 관객들에게 손뼉을 치게 하고 일어나 춤추게 만드는 걸 그냥 '흥 넘치는 퍼포먼스'로 읽으면 절반만 본 거다. 그건 아프리카 음악 구조가 원래 요구하는 것이다. 청중이 응답하지 않으면 음악이 완성되지 않는다.

서양 클래식이 정밀하게 고정된 악보의 재현을 최고 가치로 쳐온 반면, 이 전통은 즉흥과 변주를 기본값으로 삼는다. 같은 곡을 두 번 연주해도 다르다. 그게 결함이 아니라 그게 음악이다. 셀라우코에가 바흐의 첼로 모음곡 사이사이에 즉흥을 끼워 넣는 걸 서양 관객들이 파격으로 받아들일 때, 그는 그냥 자기가 배운 방식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흐미, 마당극

움응고콜로와 몽골 흐미는 원리가 같다. 한 성대에서 기본음을 깔고 그 안에 숨은 배음을 입안 통로로 조절해 끌어올린다. 인간의 후두 구조는 어디서나 똑같으니, 마이크 없이 목소리를 멀리 보내려는 시도는 지리와 무관하게 같은 물리학적 종착지에 닿는다. 우연이라기엔 정교하고, 전파라기엔 증거가 없다.

Chinggis khaanii Magtaal - Batzorig Vaanchig

Dear friends,Please consider supporting me on my Patreon https://...

www.youtube.com

다만 소리의 결까지 같지는 않다. 흐미는 트인 초원에서 바람과 물소리를 흉내 내며 자랐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얇고 맑게, 멀리 쏘아 올리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 피리에 가까운 배음이다. 움응고콜로는 활 악기 우하디의 웅웅 거리는 공명을 입 안에 옮겨온 소리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더 거칠고, 혀를 차는 타악기적 질감이 섞인다. 둘 다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기술'이지만, 하나는 바람을 닮았고 하나는 활줄이 튕기는 소리를 닮았다. 같은 발명을 두 번 했는데, 각자 자기 땅의 소리를 베꼈다는 뜻이다.

한국 마당극과의 연결은 발성이 아니라 무대의 모양에 있다. 아프리카 전통 연행은 대개 원으로 이루어진다. 중심에 무용수와 타악기가 있고 마을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싼다.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은 서열도 없다는 뜻이라 한다. 마당극의 '마당'도 같은 발상이다. 평평하고 열린 공간에 관객이 둘러앉으면, 무대와 객석의 높낮이 자체가 사라진다.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얼씨구" 추임새를 받고, 흥이 오르면 구경하던 사람이 판 안으로 들어와 춤추다 나간다. 정해진 대본이 있어도 그날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판이 달라진다. 마지막엔 배우와 관객이 뒤섞이는 대동놀이로 끝난다. 셀라우코에가 콘서트홀에서 하는 일이 딱 이거다. 박수도 정해진 타이밍에만 치던 사람들을 마당판 관객으로 바꿔놓는다.

물론 결이 다른 지점도 있다. 아프리카의 원은 리듬을 겹겹이 쌓아 무아지경으로 몰고 가는 쪽에 가깝고, 마당극은 갈등과 풍자가 있는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쪽이다. 하나가 트랜스라면 하나는 해학이다. 그런데도 둘 다 예술을 사적 감상이 아니라 공동의 사건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완성품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함께 만든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문화권이 이 결론에 각자 도달했다는 사실이, 이게 인간 예술의 오래된 기본값에 더 가깝다는 걸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셀라우코에는 서구 클래식 음악의 틀 안에서 훈련받았지만 그 틀을 깨는 대신 넓힌다. 아프리카 음악 전통은 그 자체로 이미 다양하고 정교한 체계이며, 우연히도 몽골 흐미나 한국 마당극과 발성이나 구조에서 겹치는 지점이 있다. 부름과 응답, 몸에서 나오는 배음, 무대와 객석의 흐린 경계.

굳이 결론을 짓자면 — 다른 대륙, 다른 언어, 서로 들어본 적도 없는 전통들이 비슷한 자리에 도달했다는 게 결론이다. 이게 인류 보편성 어쩌고 하는 거창한 얘기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역량을 넘어가는 일이다.  나는 그냥 첼로 하나가 목청까지 동원해서 두 개의 음을 동시에 내는 장면이 좋다.
https://dnlsoli.tistory.com/m/276

맨발의 디바가 부르는 Sodade.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대상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

지도에서 아프리카 서쪽 바다를 짚어보면 점 몇 개가 흩어져 있다. 세네갈 다카르에서 서쪽으로 오륙백 킬로미터. 카보베르데다. 화산이 만든 섬 열 개, 사람 사는 곳은 아홉 개. 1456년까지는 아

dnlsoli.tistory.com

https://dnlsoli.tistory.com/m/277

Donde voy. 어디로 가나요. 국경의 슬픔

https://dnlsoli.tistory.com/m/273 Africa is Back - Abel selaocoe의 음악 세계.아프리카 문화에서 음악은 박물관에 박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유이자, 소통이며, 조상들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저는 첼로

dnlsoli.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