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아프리카 서쪽 바다를 짚어보면 점 몇 개가 흩어져 있다. 세네갈 다카르에서 서쪽으로 오륙백 킬로미터. 카보베르데다. 화산이 만든 섬 열 개, 사람 사는 곳은 아홉 개. 1456년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와서 히베이라 그란데를 세웠다. 유럽인이 열대에 지은 첫 영구 정착지. 대단한 업적처럼 들리지만, 곧 진짜 쓸모가 드러난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사이, 딱 중간. 노예무역선들이 쉬어가기 좋은 자리였다. 이 위치 덕에 20세기 초엔 증기선의 중간 기착지로 잠깐 호황도 누렸다.
거기서 크레올이 태어났다. 끌려온 사람들과 정착민들, 그리고 그들의 말이 함께 섞였다. 지금 쓰는 크리올루어는 어휘의 팔구 할이 15, 16세기 포르투갈어에서 왔는데 문법은 월로프어, 만딩카어 같은 서아프리카 언어를 따른다. 포르투갈 사람도 못 알아듣는다. 포르투갈어인데 포르투갈어가 아니게 된 것이다.
노예제가 끝나자 섬은 가난해졌다. 원래도 척박했는데 팔 사람마저 없어지니 남는 게 없었다. 그다음은 가뭄, 반복해서 왔고 그때마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떠났다. 뉴잉글랜드로, 포르투갈로, 네덜란드로. 그중 상당수는 산토메 프린시페행 계약노동이었다. 말이 계약이지 편도였다. 코코아 농장에서 병들어 죽거나, 살아도 돌아올 뱃삯이 없었다. 포구에서 배웅하며 눈물짓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던 시절, 여기서 노래 한 곡이 나온다.
https://youtu.be/dNVrdYGiULM?si=TQwjqJUQT9fyqubA
"Sodade." 세자리아 에보라를 세계에 알린 곡. 포르투갈어 사우다드에서 왔는데 그냥 그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그리움. 가사는 떠나는 이와 남는 이 사이의 문답으로 흘러간다. 누가 이 먼 길을 가르쳐줬냐는 원망, 잊어도 좋으니 언젠가는 돌아오라는 애원. 그 사이 어딘가를 계속 오간다. 1950년대 아르만두 제페리누 소아르스가 만들었고, 1992년 에보라가 앨범 《Miss Perfumado》에 실으면서 세상이 이 섬을 알게 됐다.
Quem mostra'u esse caminho longe?"
(누가 당신에게 이 먼 길을 알려주었나요?)
"Esse caminho pra São Tomé..."
(산토메로 향하는 이 까마득한 길을...)
"Sodade, sodade, sodade dessa minha terra de San Nicolau."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나의 고향 상니콜라우 섬에 대한 이 아득한 그리움이여.)
"Se t'o escreveu, 'm 'ta escreve'u, se t'o esquece'm, 'm 'ta esquece'u..."
(당신이 내게 편지를 쓴다면 나도 답장을 쓰겠지요, 당신이 나를 잊는다면 나도 당신을 잊으려 애쓰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맨발의 디바
에보라는 늦게 뜬 가수다. 오십 가까이까지 민델루의 작은 바에서 노래했다. 무대에 오를 땐 신발을 벗었다. 신발도 못 신는 고향의 여자들과 아이들을 생각해서였다. 화려한 발성도, 전자악기도 없었다. 우쿠렐라를 닮은 4현 악기 카바퀴뉴와 어쿠스틱 기타, 바이올린 정도. 노래 사이사이 무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셨다. 민델루의 작은 술집에서 하던 그대로 세계적인 무대에 올라간 셈이다. 담배에 절은 듯한 콘트랄토로 그저 담담하게 불렀는데, 그 무덤덤함이 오히려 슬픔을 키웠다. 크리올루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도 노래는 통했다. 2004년엔 그래미도 받았다.

이 정서를 부르는 방식은 모르나라는 장르로 굳어졌다. 파두나 블루스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반대편엔 콜라데이라가 있다. 빠르고 짓궂고, 연애와 세태를 놀리듯 부른다. 슬픔과 흥, 두 갈래로 섬의 감정을 나눠 담은 셈이다. 2019년 모르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에보라가 세계 무대에 쌓아놓은 것이 컸다는 평가다. 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카보베르데라는 이름을 아는 것도, 아마 이 가수 덕분일 것이다.
https://youtu.be/tix6y54jSVc?si=g6n-t6-DITfW5x7y
2011년 죽었을 때 나라는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2천 에스쿠도 지폐엔 그녀 얼굴이, 상비센트 섬 공항엔 그녀 이름이 붙었다. 살던 집은 박물관이, 거리는 벽화가 됐다. 죽은 가수를 기린다기보다, 지폐 속에서 계속 노래를 시키는 쪽에 가깝다.
1975년 독립한 이 섬엔 지금도 자원이 없다. 농사지을 땅도, 캘 광물도 없다. 대신 관광과 송금과 물류로 산다. 밖에 나가 사는 카보베르데인이 칠십만, 본국 인구 육십만보다 많고, 그들이 보내는 돈으로 나라가 돌아간다. 나라 하나가 통째로 밖에서 사는 셈인데, 이것도 소다드의 또 다른 얼굴 아닌가 싶다. 그리움값을 매달 부치는 것.
섬 하나가 이렇게 요약된다. 발견되고, 팔려가고, 떠나고, 노래하고, 돌아오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의 이름이 결국 소다드였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다른 대륙의 애절한 곡 하나가 겹친다. 그건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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