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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다

통영에서 만난 꽃의 시인 김춘수

by 낙타 2021. 6. 8.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가 김춘수의 "꽃"이다. 통영 사람들도 자기들 고장에서 태어난 시인의 명작을 좋아해서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은 1922년 현재의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부두의 노동자들과 어울려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귀국하여 1946년부터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중섭의 [황소]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김춘수의 '꽃'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간결하고 서정적이면서 관계를 통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지닌다는 시인의 노래는 어려운 이론을 몰라도 마음속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정작 김춘수 시인은 나중에는 이 시를 대표작이라고 하면 싫어했다고 한다. 시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초기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서양 시인들의 시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의미 시론’이란 걸 들고 나왔다. 어려운 내용은 생략기로. 그런데 초기 작품인 「꽃」, 특히 끝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는데 시구에 버젓이 '의미가 되고 싶다'라고 했으니 시인은 이 시를 고친다. 그래서 이 시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라는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 마음이 드는지?

이 사진은 충렬사에서 내려오면 '윤이상 학교 가는 길' 입구쯤에 있는 '서피랑 국숫집'이다. 유치환의 행복, 백석의 추야 일정, 김상옥의 봉선화와 더불어 김춘수의 '꽃'이 쓰여 있다. '눈짓' 버전이다. 통영과 관련 있는 시인들의 대표작을 몽땅 소환해 놓았다. 국수도 맛있을 거 같다. 다음에는 꼭 먹어보리라.

2020년 겨울에 통영의 펜션에 숙박했을 때 사진이다. 야외 바베큐장인데 뒤쪽 가림천에 "꽃"이 인쇄되어 있다. 이 사진과 해물탕집에 걸려 있던 백석의 "통영'이 통영 문인들의 흔적을 찾게 되고 글을 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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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몇 년 전 동피랑 마을에서 찍은 듯하다. 이 가게의 주인도 '눈짓' 버전을 채택했다. 혹시 통영시 차원에서 합의한 것일까?

통영에서 김춘수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 본다.

먼저 김춘수 생가거리. 동피랑 마을 입구 쪽에 있다. 토영~이야길 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길가에 놓인 예쁜 벤치에 앉아서 시인이 우리를 반긴다.

벤치 있는 곳의 골목길이 김춘수 생가거리다. 생가거리라고 하지만 정작 길의 길이는 고작 10미터 정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김춘수 시인의 모습과 시들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인근의 학교 학생들이 그렸다고 한다. 벤치도 학생들이 디자인하여 만들었다.


여기도 '눈짓'이다.

김춘수 생가의 표지석이 있다. 지금은 일반인이 살고 있어서 안을 볼 수 없다. 김춘수를 서울과 일본에 공부하러 보낼 정도의 유복한 집이라서 집 안은 제법 여유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박경리 생가도 그렇지만 통영시가 돈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훌륭한 문화 관광자원을 내버려 두고 있다.

김춘수의 흔적이 남은 또 다른 곳. 남망산 공원으로 가는 길의 입구에 김춘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에는 또한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있다. 미륵도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