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서 시작된 질문
마르셀 뒤샹은 1917년, 공장에서 만든 평범한 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 전람회에 출품했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큰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전시를 거부당해 전시장에 놓이지도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 이 작품은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습니다. 예술의 정의를 송두리째 바꾸었거든요.

오늘날 예술이 한 땀 한 땀 정성껏 깎고 다듬는 '가내수공업'의 틀을 벗어던진 건 바로 이 변기 덕분입니다. 장인의 손길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명품 가방이 예술품이 아닌 최고급 공산품으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음악에서도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입니다. 연주자가 무대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이 곡의 파격적인 점은, 어떤 악기로도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곤 합니다. (농담입니다.) 일단 한번 들어보실까요?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입니다.
역시 명불허전이네요. 침묵마저도 흠잡을 데 없는, 베를린 필하모닉다운 완벽한 연주였습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현대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현대 예술은 '기술'보다 '개념', 즉 아이디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그렸는가는 예술의 유일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가수 조영남 씨의 대작(代作) 사건입니다. 조영남 씨는 조수를 시켜 화투장을 그린 뒤 자신의 서명을 넣어 팔았고, 이것이 사기라며 재판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붓질을 누가 했느냐보다 '화투를 그리겠다'는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이냐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죠. (조영남 씨의 화투 그림을 사가는 이유가 개인적으로 궁금하긴 합니다. 동양화 감상하려고 샀을까요?)
우리를 떠받치는 '공인들'
이러한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제가 여러분께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서도호 작가의 1998년 작, <공인들(Public Figures)>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보면 거대한 석조 기단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보통 이런 기단 위에는 영웅이나 위인이 서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 작품의 기단 위는 텅 비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사라진 것입니다.
대신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면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단 밑에 수백 명의 아주 작은 사람 조각들이 빽빽하게 모여 그 거대한 돌덩이를 손으로 힘겹게 떠받치고 있거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은 사람들은 똑같은 기계적 복제품도 아닙니다. 성별, 인종, 옷차림, 자세가 각기 다른,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익명의 개인'들입니다.

작품의 제목인 'Public Figures'는 보통 유명인이나 정치가 같은 '공인'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대중의 형상', 즉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작가는 영웅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역사를 만드는 것은 한 명의 위인이 아니다"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거대한 역사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버티는 수많은 개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마치 현대판 '아틀라스'와 같은 이 작품을 보고, 저는 가슴을 자동차가 들이받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 혹은 잊고 있었던 진실을 이렇게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가들의 역할이며, 예술이 존재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알고리즘이 데려다준 '마음의 고향' (feat. 나부코 & 보니엠) (2) | 2026.01.11 |
|---|---|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협화음 - The Glory (????) of the Human Voice (3) | 2026.01.09 |
| 항해 - 보들레르의 여행론이자 인생론 (4) | 2024.12.24 |
| 솔론의 인생론, feat 크로이소스와 키루스 (0) | 2024.12.24 |
| 캐논을 듣다가 이런저런 생각 (5) | 202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