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데려다준 '마음의 고향' (feat. 나부코 & 보니엠)

낙타 2026. 1. 11. 10:52
고향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당신의 내면에 있거나, 아니면 그 어디에도 없다. -  헤르만 헤세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료가 어느덧 15,000원까지 올랐습니다. 야속할 정도로 가파른 인상 폭에 분노하며 구독 해지를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 구글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보물 같은 영상을 마주할 때면, "이 맛에 돈 벌지" 싶어 슬그머니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구글 이 녀석들, 어쩌면 다 계획이 있는 걸까요?

오늘 제 마음을 붙잡은 영상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베르디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바빌론 강가에서 요단 강을 그리워하며 우리는 울었

#히브리노예들의합창 #베르디나부코 #디아스포라의노래 #유대인 #명작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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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며 무대 구성에 깊이 감탄했습니다. 역시 오페라나 뮤지컬은 자본이 투입된 만큼 무대의 깊이와 몰입감이 다르더군요. 과거 라스칼라 극장의 <아이다> 공연을 영상으로 보며 느꼈던 전율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최근 직관했던 뮤지컬 <레베카>의 압도적인 무대 연출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압권은 합창단의 연기였습니다. 해설자의 설명처럼 오페라 공연 중에 앙코르가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합창곡이 관객의 찬사를 이끌어내며 앙코르를 받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며 문득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말을 '있던 고향을 잃었다'기보다 '애초에 고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이라는 개념'이 아니까요? 유대인들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돌아갈 실재하는 고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더 깊은 외로움 속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온천천의 강변, 그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진정한 고향은 지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고 내 마음이 평화를 얻는 곳이다. - 출처 GEMINI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에게는 익숙할 이 구절은 성경 시편 137편을 바탕으로 합니다. 베르디의 곡은 표현 방식에서 성경이나 팝송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정서는 같은 뿌리에 닿아 있습니다.

시편 137편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시온)을 그리워하며 강가에서 울었던 처절한 기록입니다. 원문에는 고통스러운 복수의 염원까지 담겨 있습니다. 베르디는 이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며 '복수' 대신 '그리움'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가라,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를 타고!"라는 가사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인들의 독립 의지를 깨우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편의 가사를 사용한 팝송 보니 엠(Boney M.)의 'Rivers of Babylon'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재미있게도 이 곡이 라인댄스 동호회에서도 큰 사랑을 받습니다. 보니 엠은 슬픈 시편의 가사를 가져오면서도 역설적으로 경쾌한 레게 리듬을 입혔는데, 어쩌면 슬픔을 춤과 몸짓으로 승화시키려는 인간의 본능이 라인댄스라는 즐거움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Rivers of Babylon Linedance/ Easy Beginner/ Muse Linedance

😆Rivers of BabylonCount: 32 Wall: 2 Level: Easy BeginnerChoreo:Molly Yeoh (MY) - October 2016Music:By The River of Babylon Remix (Boney M)#RiversOfBabylo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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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온천천이나 청계천 강변에 앉아 각자의 삶을 고민할 때, 19세기의 이탈리아인들도, 그리고 머나먼 과거의 유대인들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15,000원의 구독료 덕분에(?) 뜻밖의 위로를 얻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며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한 번 더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