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해녀 3 - ​부산의 바다에 스민 해녀의 숨결

낙타 2026. 1. 20. 11:04
다시 태어나면 해녀? 글쎄. 아이고. 물질은 저승질 왔다 갔다 하는 거.

제주의 바다가 척박한 세금과 수탈의 현장이었을 때, 해녀들은 살기 위해 물길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출향 해녀'들이 닻을 내린 곳이 바로 부산, 영도와 그 인근 바다였습니다.

광안대교 아래에서

당시 일제는 전쟁물자로 우뭇가사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비행기의 도료, 세균 배양액, 그리고 군인들이 먹을 양갱을 만드는 재료였거든요. 이 때문에 해녀들은 그 차가운 바다에서 강제적인 채취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육지로 나오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해녀들은 초기 이주 비용과 가족 생계비 때문에 빚을 지고 육지로 와야 했습니다. 이를 악용한 객주와 일본 상인들의 고리대금업 및 불공정 거래는 그녀들을 빚더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자원 수탈의 가장 아픈 단면 중 하나입니다.

오늘 나는 부산의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그들의 거친 숨비소리를 주워 담아봅니다.

이기대, 바위가 된 간절한 기도

부산의 해안 절경으로 꼽히는 이기대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바다를 향해 우뚝 선 기이한 바위 하나를 만납니다. 장롱을 닮아 '농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는 해녀들에게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는 이정표였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에게는 '부처바위'라 불리는 신앙이었습니다.

이기대 농바위

한 호흡에 목숨을 걸고 바닥을 훑어야 하는 작업. 단단히 붙은 전복을 떼어내다 숨이 가빠지고, 해초가 발목을 휘감는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해녀들은 저 바위를 보며 무사 귀환을 빌었을 것입니다. 이기대 절벽 아래 뚫린 해식동굴은 선배가 후배에게 물질을 가르치고, 얼어붙은 몸을 녹이던 그들만의 학교이자 쉼터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차가운 바다와 싸우는 법, 그리고 끝내 살아남는 법을 전수했을 것입니다.

이기대 해식동굴
물질은 저승돈 벌어 이승에서 쓰는것

“물질은 저승길 왔다 갔다”…제주도, 해녀 생애사 조사보고서 펴내

“다시 태어나면 해녀? 글쎄. 아이고. 물질은 저승질 왔다 갔다 하는 거. 숨 참아서 소라 하나라도 줏으려고 바당에 들어갔다가 없으면 올라오다 다시 봐지면 그거 잡으려고 하다 보면 숨이 다

www.hani.co.kr

죽성 황학대,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이름

멸치 떼가 춤추는 대변항과 장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월전을 지나 죽성항에 닿습니다.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화려한 포토존, 드라마 세트장인 '죽성 드림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였던 '황학대'가 고고하게 서 있습니다.

죽성 드림세트장
죽성 황학대

하지만 화려한 풍경의 뒤편, 황학대 뒤로 돌아가면 구석진 곳에 설명 한 줄 없이 덩그러니 놓인 해녀상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한때 이곳 앞바다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이었을 해녀들이 부지런히 자맥질을 했던 삶의 터전이었을 겁니다. 일제강점기, 빚에 묶여 육지로 팔려오듯 건너와야 했고 억척스럽게 살아냈던 그들의 사연이 저 조각상에 담겨 있을 텐데…. 잘 관리된 세트장과 대비되는 초라한 모습에 마음이 아립니다.

죽성 황학대 뒤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들어진 세트장의 환상이 아니라, 이 땅의 모진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저 해녀상의 침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광해수욕장, 기다림의 바다와 갯마을

여정의 끝자락,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이 있습니다. 테왁과 물안경을 곁에 둔 그녀의 이름은 '해순이'입니다.

일광 바닷가의 해순이


소설가 오영수의 <갯마을> 속 주인공인 해순이의 삶은 우리네 해녀들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제주에서 건너온 어머니는 떠나고, 첫 남편은 바다에서 잃고, 두 번째 남편마저 징용으로 끌려가 소식이 끊긴 기구한 운명. 일제가 전쟁을 위해 남편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고, 남겨진 여성들이 가장이 되어 억척스럽게 바다를 일궈야 했던 그 시대의 아픔이 해순이의 뒷모습에 서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해순이는 산골로 도망치지 않고 다시 바다로, '갯마을'로 돌아옵니다.

서정적인 풍경 속에 감춰진 그 강인한 생명력이야말로 일제 수탈과 가난, 고된 노동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해녀 정신의 본질일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는 왜 길에서 만난 해녀들의 모습과 흔적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그들의 삶에서 우리 어머니와 누나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평생을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오빠를 위해,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우리 누나들. 비록 자리한 곳과 모습은 달라도 언제나 그리움과 감사의 대상이니까요.

기억을 더듬어 빛바랜 사진을 찾기 힘든 것처럼, 우리 곁에서 해녀들의 흔적도 점차 희미해져 갑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농바위의 기도, 죽성의 잊혀진 동상, 일광의 해순이는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바다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치열하게 숨 쉬며 살아낸 그들의 '삶'이었다고 말입니다.

육지해녀 1번지 영도를 기념하여 부산일보에서 해녀에 관한 아카이브를 만들었습니다.

부산숨비

soomb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