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재미 없을 때는 추리소설 -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

낙타 2026. 3. 23. 11:05

이름은 본질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잘못된 이름은 정체에 대한 오해를 일으킨다.

SF소설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Science Fiction이라고 하면 우주선, 외계인, 로봇, 인공지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것들이 SF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슐러 르 귄의 말처럼 SF의 본질은 "은유"다. 스타워즈는 광선검과 제다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선과 악,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외계인은 '타자'에 대한 은유이고, 로봇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다.

추리소설도 오해하기 쉬운 이름이다. 아서 코난 도일에서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추리소설에는 언제나 명석한 형사나 탐정이 범인의 트릭을 깨고 진범을 찾아낸다. 그러나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트릭이 아니다. 추리소설의 껍데기는 '누가 범인인가'이지만, 알맹이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에 있다. 추리소설은 범죄를 통해 사회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곳을 보여준다. 욕망, 질투, 사랑, 탐욕, 복수, 부조리.

셜록 홈즈 시리즈가 보여주는 것은 그 당시 영국이 안고 있던 문제들이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 범인이 밝혀지고 나면 범행 동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추리소설이다.

그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 중 하나가 데니스 루헤인이다.
루헤인의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보스턴의 노동자 계층 동네 '도체스터'를 배경으로 한다. 이 배경 자체가 이미 이야기의 절반이다. 상류층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범죄들 — 가난, 마약, 가정폭력, 방치된 아이들 — 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루헤인은 범죄 그 자체보다, 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토양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다른 탐정이나 형사들과 달리, 켄지는 맨날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다니는 역 전문이다. 셜록 홈즈처럼 완벽한 초인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끊임없이 상처받는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을 하드보일드의 정점으로 만드는 요소다.

켄지는 정의를 실현하려 노력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사건은 해결되고 범인이 잡혔는데, 책을 덮으면 가슴이 갑갑하다.

특히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읽고 나면 속에 떡이 열 개쯤 걸린 느낌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악한 환경 속의 좋은 양육'과 '혈연 중심의 방임' 사이에서 켄지가 내린 선택은, 독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거리다. 범인을 잡았다 = 정의가 실현됐다는 공식을 이 소설은 완전히 무너뜨린다. 아이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법과 윤리가 일치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독자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불편함을 남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이어지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문라이트 마일》이 한 가닥 희망을 주면서 끝난다는 점이다. 루헤인이 오랜 침묵 끝에 쓴 이 완결편은,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켄지와 제나로가 과거의 선택을 어떻게 대면하는지를 보여주며 일종의 구원의 기회를 제공한다. 계속 부조리만 쌓아가면 독자도, 작가도 탈진한다. 희망을 주되 낙관적이지는 않은 — 그 균형이 이 시리즈의 미덕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단순히 사건의 연속으로만 읽으면 절반밖에 못 읽은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켄지와 제나로,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른다.

패트릭 켄지와 앤지 제나로는 같은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다. 시리즈가 시작될 때 앤지는 폭력적인 남편 필 제나로와 결혼한 상태다. 켄지는 그런 앤지 곁에서 파트너로, 친구로 함께 일한다.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없을 리 없지만, 켄지는 선을 넘지 않는다. 친구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 긴장감이 시리즈 초반 내내 팽팽하게 유지된다.

전환점은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온다. 앤지가 결국 남편 필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켄지와 앤지는 마침내 연인이 된다. 그러나 루헤인은 이것을 해피엔딩의 시작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함께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도 함께 커진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그 무게는 정점에 달한다.《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켄지가 내린 선택은 앤지와의 심각한 균열을 만든다. 앤지는 켄지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옳다고 믿는 것 사이에서 갈라서는 경험,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혹독하게 시험하는 순간이다. 사건을 함께 해결했지만, 책을 덮을 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그리고 《문라이트 마일》에서 세월이 흐른다. 켄지와 앤지는 이제 부부가 되어 딸 릴리앤을 키우고 있다. 과거의 균열을 봉합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두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아만다가 다시 나타난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루헤인이 영리한 것은, 이 마지막 작품에서 켄지와 앤지의 관계를 다시 시험대에 올리면서도 두 사람이 이번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소꿉친구에서 파트너로, 파트너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균열로, 그리고 균열을 딛고 선 부부로. 켄지와 앤지의 관계는 시리즈 전체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아프게 성장한다.

이 시리즈를 다 읽고 나면 가슴에 떡이 걸린 듯 체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게 바로 루헤인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진실의 무게다. 추리소설이 단순히 트릭을 푸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인생이 재미없을 때 추리소설을 펼쳐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