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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걷다

통영에서 만나는 이중섭의 예술

by 낙타 2021. 5. 19.

이중섭5
김춘수

충무시 동호동
눈이 내린다.
옛날에 옛날에 하고 아내는 마냥
입술이 젖는다.
키 작은 아내의 넋은
키 작은 사철나무 어깨 위에 내린다.
밤에도 운다.
한려수도 남망산,
소리 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충무시 동호동
눈이 내린다.


이중섭은 6.25전쟁이 터지자 원산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온다. 그러나 전쟁 중의 부산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다. 1951년 봄에 서귀포로 가는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린 아내와 두 아이를 일본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에 이중섭은 1952년 경남도립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강사로 있던 공예가 유강렬의 도움으로 통영에 터를 잡게 된다. 유강렬은 이중섭에게 양성소와 붙어 있는 집에 조그만 방을 구해주며 그를 지원해 주었다. 이중섭은 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가 있던 자리. 이중섭은 통영에 머무를 때 이 건물 뒤의 조그만 다다미방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양성소에서 데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1952년 봄부터 1954년 봄까지 이중섭은 약 2년간 통영에서 지내게 된다. 통영 생활이 그렇게 긴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는 이중섭이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이며 이중섭의 대표작들 대다수가 이 때 통영에서 그려졌다.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등 이며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통영 앞바다], [통영 풍경], [통영 유원지], [충렬사 풍경]등의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다.

1950년대 당시 통영에는 많은 문인 예술인들이 있었다. 화가 김용주, 전혁림, 장윤성, 유강렬, 김경승, 남과, 박생광 등이 있었고 문인으로는 청마 유치환, 김춘수, 초정 김상옥 등이 있었다. 이중섭은 동료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고 선술집에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이 시기 통영은 전쟁의 피해가 비교적 적었고 주변의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중섭은 그림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피난 생활 중 가장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시기일 것이다. 이중섭이 다른 시기에는 잘 그리지 않았던 풍경을 통영에서 자주 그린 것을 보면 잠시나마 피난 생활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림을 그려서 성공을 거두어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집념이 그의 작품 활동을 더욱 부채질 했을 것이다.

이중섭은 1952년 쯤에 전혁림, 장윤성, 유강렬 등과 호심다방 - 어떤 기록에는 녹음다방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쪽이 정확한지는 확인을 못하겠다. - 에서 4인 전을 개최했다. 그 당시 다방은 여러 전시회들이 열리곤 했다. 1953년 12월에는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이때 [흰소], [황소], [부부], [달과 까마귀]등 통영 생활 중에 그린 4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되었다. 청마 유치환은 이 개인전에 들렀는데 이중섭이 사망한 지 11년 후 그의 작품을 떠올리는 시를 발표했다. 또한 김춘수도 이중섭에 관해서 연작시를 썻다.

통영에는 이중섭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통영에는 이중섭을 기념하고 작품을 볼 수 있는 기념관이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개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건물의 3층에 이중섭을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통영에 갔을 때 들러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도천동의 성모안과 건물이다.

강구안 문화마당에는 이중섭의 그림이 석판과 아트타일로 설치되어 있다

또한 통영의 중심을 통과하는 중앙로의 서호시장 입구 인도에도 이중섭의 그림들이 인도에 석판과 아트타일로 설치되어 있다.

강구안 길 입구에는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이 있는데 이중섭의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에서 따온 것이다.

이중섭의 삶을 돌아보면 고흐의 외롭고 고단했던 길과 겹쳐 보인다. 다음에 통영의 별 아래에 서면 나는 고흐와 이중섭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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