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유산으로 남긴 미술품들이 화제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 고미술품부터, 유명 서양 현대미술품까지 최고급만 수집했다. 국내외 작가 미술품을 포함해 총 2만3000여점을 기증한다. 이 작품들은 호암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과는 별도의 이건희 회장 개인 소장품들이이라고 하니 놀랍다.
삼성의 미술품 구입 방식은 비자금을 이용했다는 폭로가 있었고 삼성문화재단이 편법 상속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논란도 많다. 그러나 어쨋든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이나 되고 이중섭(104점), 유강열(68점), 장욱진(60점), 이응로(56점), 박수근(33점), 변관식(25점), 권진규(24점) 등의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이 공개되니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설레이겠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3대 사립 박물관은 간송 미술관, 호암 미술관, 호림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들의 공통점은 개인 소장가가 설립하였으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은 열정적인 고미술품 수집가였으며 1965년에 용인에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집에 열중했다. 마침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됨과 동시에 일본 자본이 대거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한국 고미술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또다시 한반도의 유물이 일본으로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 이병철의 재력과 수집욕은 효과적인 대책이 되었다. [인왕제색도]가 이 시기에 이병철의 수중에 들어갔다. 1982년에 호암 미술관을 개관함으로 한국 고미술의 중심축이 되었다. 호암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경주 국립 박물관의 세 배 이상의 규모로서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유물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
삼성은 호암 미술관의 수집품이 너무 많아지자 해외 분야를 나누어 전시하기 위해 현대적인 박물관을 2004년에 건립했는데 리움 미술관이다. 리움 미술관 또한 규모로나 질적인 면에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박물관 보는 법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한국의 박물관에 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소개하고 있어서 박물관을 찾을 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하는데 서양에서는 모두 뮤지엄Museum이다. 일본에서 근대 이전 유물은 박물관에서, 근현대 예술은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박물관과 미술관을 나누기 시작했다.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 수도 알렉산드리아의 궁전 무세이온Museion이며 여기서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서양의 경우에는 1682년 영국의 한 개인 소장가가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옥스퍼드대학교에 기증하면서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고, 1753년에 슬론 경의 소장품을 기증받은 대영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793년 루브르 궁에 회화 작품이 전시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1870년 메트로풀리탄 박물관, 1876년 보스턴 미술관 등이 설립되면서 박물관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서는 1882년 도쿄 국립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근대화의 순서대로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미술품 수집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일본 강점기에 시작한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무덤을 도굴하여 서양에 팔아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덤을 도굴하기 위한 핑계로 고려장이라는 것을 날조했다고도 한다. 실제로는 효를 지상 최고의 덕목으로 쳤던 조선에서 부모가 위급할 때 단지의 효행은 있어도 먹을게 없다고 부모를 내다버렸을 리가 없다. 오히려 고려장은 일본의 풍습이었는데 정작 한국인들도 고려장이 정말로 한반도의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갑갑한 일이다. 잠시 이야기가 곁길로 샛다. 그렇게 일본은 자신들의 근대화에 필요한 자본을 조선의 무덤을 도굴하여 마련했다. 조선은 참으로 여러모로 알뜰하게 발라먹을 수 있는 먹이감이었다. 도쿄 국립 박물관의 오구라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한국 최초의 박물관은 이런 암울한 시기인 1909년 11월 1일에 일제의 강요에 의해 창덕궁 안에 만들어진 이왕가 박물관이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사라졌으니 박물관 건립은 순종의 거의 유일한 업적인 셈이다. 박물관의 탄생에도 민족 수난의 역사가 드러난다. 이왕가 박물관은 1969년에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유물 카드에 '덕수'라고 적혀 있는 것이 이왕가 박물관의 흔적이다.
시작은 비참했지만 이왕가 박물관은 그 시기에 한반도 유물이 헐값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활을 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두 점의 금동반가사유상이 바로 이왕가 박물관이 거액을 들여서 지켜낸 문화재이기도 하다.
[박물관 보는 법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에는 이 외에도 여러 한국의 박물관의 유래와 여러가지 사연들이 들어있다.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간송 전형필과 간송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 김활란과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윤장석의 기증품으로 세워진 호림 박물관, 동아대학교의 창립자인 석당 정재환 박사와 동아대학교 석당 박물관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천안의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야외 조각공원에 세계적인 에술가들의 예술작품 - 엄청나게 비싼 - 들이 전시되어 있는 사연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이다. 미술이란 원래 보이는 것인데 무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나 싶다가도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미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박물관은 다양한 기획이 있고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로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 부산시립박물관도 점점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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