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자기계발서를 집어 들었다.
저자는 시부이 마호.
1994년 대학의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6년 선배이자 사수인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후에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극도의 자존감 상실을 겪은 후, 어느날 남편과 말다툼을 한다. 남편은 자기에게 경제 수업을 받으라고 한다. 저자는 남편에게 경영형 인재로 변하기 위한 강의를 받고 백화점의 향수 매장 매니저로 일하다가 증권 회사의 영업 직원으로 옮겨간다. 우연한 기회에 기업 컨설턴트에게 투자를 받고 남편에게 배운 경영자형 인재에 대한 강의를 하는 컨설턴트 회사를 창업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남편은 은행에 근무하며 대화 내용으로 보아서는 고위 간부라기 보다는 중간 직급의 은행원으로 보인다. 남편은 자기가 배우고 현업에 종사하며 사람과 기업을 경험한 내용을 아내에게 전해준다. 이 책의 내용은 주로 남편이 아내에게 전해주는 내용과 아내가 투자를 받게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강의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경영자형 인재에게 필요한 '4가지 돈 버는 센스'이다. 돈이 붙는 사람, 일을 성취해내는 사람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시각이다.
첫째.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
10년 후, 2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까? 이것은 눈앞에 있는 현실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면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고 방식이다.
둘째.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
어떤 사건 하나가 사회 전체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고 또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관련 되는가? 이런 내용을 보다 넓은 안목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 파악하는 시각을 말한다.
세번째.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시각.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고 더 이상 남의 의견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을 키워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태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나 원인을 파악하는 시각이다.
넷째. 다각적이고 다면적인 시각.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환경 때문에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사태를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시각이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돈 버는 센스'를 길러서 어디를 가서든지 ceo가 될 수 있는 경영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 내용이다. 좋은 말이긴 한데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 쉽게 와닿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 비즈니스계의 인식이다. 일본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자본주의 세상입니다. 경제나 금융, 법률의 구조를 모르고 세상에 던져진 사람은 이종격투기인 K1 무대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싸워야 하는 입장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링 위에 올라서는 순간 넉 아웃되고 말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기업이나 국가가 그 사람을 보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보호를 받는 대가로 사람들은 국가나 기업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가 시작된 지금, 더 이상 기업이나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호막도 사라졌습니다. 바로 종신고용이나 퇴직금 제도가 폐지된 것입니다. 기업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므로 기업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종신고용이나 퇴직금 제도를 폐지할 거라면 적어도 직원들의 눈가리개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국가나 기업이 개개인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 쪽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회사만 믿고 살다가는 낭패를 보게 됩니다. - [남편보다 쪼끔 더 법니다] 중에서
일본인들의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이렇게 느끼고 있나 보다. 그래서 이 책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리라.
일본은 1985년의 프라자 합의로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고 엔화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는 1991년까지 거품 경제에 접어들었다가 그 후의 극심한 장기침체를 겪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일본이 지금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 미국을 바싹 추격하던 활력을 잃은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의 탈출구로 일본인들은 어떤 방법을 택하고 있을까?
세계무대에 오르기 전의 일본은 사회주의 체제하고 비슷했다. 기회도 평등하고 결과도 평등한 그런 세계였다. 일본은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가 돼서야 비로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편입되었다. 일본은 소리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지만 결과는 불평등한 방향으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탈출구가 바로 '경영자형 인재의 시각'이며 '돈 버는 센스'이다.
저자는 - 저자의 남편은 - 상식과 도리를 다시 바라보라고 한다. 상식이나 도리는 언제, 그리고 어떠한 배경 아래에서 만들졌을까? 알면서도 상식이나 도리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면서 얽매여 있다면 위험한 상태이다.
일본의 도덕이나 상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 1649년에 발령된 '게이안의 규범'에 기초를 두고 있다. '게이안의 규범'은 도쿠가와 정권이 사농공상 중에서 농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생활 규범 관련 포고령이다. 나라에 공물을 바치기 위해서 지켜야 할 마음가짐 등을 농민들에게 교육했다.
그 내용을 보면
백성은 의류에 있어서 목면을 제외한 옷감은 사치스러우니까 입어서는 안 된다.
소작농은 지주를 부모라고 생각하고 섬겨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풀베기를 하고 낮에는 논밭을 경작하고 밤에는 새끼줄을 꼬아서 공물로 헌납하기 위한 쌀가마니를 만들어야 한다.
백성은 술이나 차를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아주 약간의 재산을 모아두어야 한다.
등등.
그 당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일개미처럼 일하는 농민'이 될 것을 강요받았다. 도쿠가와 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머리가 좋고 운을 잘 타면 농민도 영주가 될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해도 오와리 지역 농민 출신이다. 어느정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그 선택의 자유를 없애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8년에 무기 몰수령을 내렸으니 아이러니다. 무사가 아닌 농민들의 무기 소유를 금지한 것이다. 그때부터 일본의 마을에는 농민들만 남아 살게 되고 무사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서 살게 되는 병농분리 원칙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대 일본 사회에서 말하는 '도리'나 '상식'이 바로 그 '게이안의 규범'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현대인들은 도큐가와 시대의 지배층이 농민 계층을 '말 잘 듣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한 규칙을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다. 도리나 상식을 지키는 성실한 사람들일수록 지배층 입맛에 맞는 '말 잘 듣는 백성'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도리나 상식을 그저 무턱대고 믿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쿠가와 시대라면 몰라도.
저자에 의하면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만든 규칙 중 몇 가지는 오늘날의 일본 사회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현대인들은 직장에서는 상사를 부모처럼 생각하면서 묵묵히 일하고 나라에 세금을 납부하고 사치를 금기시하면서 차곡차곡 저축을 한다. 윗사람에게 대드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등등.
일본의 전 세대에서는 이런 '도리'와 '상식'을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인생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사실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 가까웠던 80년대까지의 사회가 아니라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소비자의 시대인 지금의 일본에서는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업만이 부와 기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고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도리나 상식과 다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영자형 인재의 시각이며 일본인들의 현실 인식이다.
흔히 한국은 일본을 뒤따라간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나 경제 발전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느끼고 있는 K1 무대에 오른 현실, 진정한 자본주의 시대, 기회는 평등하나 결과는 불평등한 시대가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도 다가오고 있는 현실일까?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 거북한 부분이 있었다. 남편이 아내를 가르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남편의 여성관이다. 남편의 시각에 의하면
인간 사회에서 여자들은 꽃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여자들이 모이면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그런데 만약 여자가 꽃이라면 언제까지나 꽃봉오리인 채로 살 수는 없다. 여자들은 동백꽃처럼 꽃봉오리인 채로 그냥 저버리는 건 싫다. 꽃으로 태어난 이상 활짝 피어야 한다. 그리고 활짝 핀 후에도 항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여자들의 본능이다. 일은 그런 여자들에게 사회에서 자신을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다. 남자처럼 경쟁 본능이 없고 본능적으로 스스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를 원하는 여자들은 직장을 '자기표현의 장'이자 '인정받기 위한 장소',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은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여성성을 부정하는 스타일의 업무에만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며 평생을 노력해도 힘만 들 뿐이다. 오히려 여성성이란 특징은 지금 같은 소비자 중심 시대에서는 돈 버는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씨앗이다.
그에 대해서 여성인 저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지금까지 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과 동등하게 일해야 하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남성들이 평정해 놓은 사회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건 항상 불리하다고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습니다. 여자가 남자가 되어 남성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을 가지고 당당하게 경쟁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남자와 여자를 딱 잘라서 구분지어 놓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문제 없는 것일까?
일본에는 ‘여자력 (女子力)’이라는 단어가 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혹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미의식’, ‘철저한 자기 관리’, ‘부드러운 말솜씨’, ‘요리 솜씨를 가꾸는 것’ 등. 아마 한국의 여자들이 들으면 버럭할 내용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의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자력’은 여성 비하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면서 매력을 발산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남편이 주장하는 바가 그렇고 아내가 받아들이는 내용이 바로 이 '여자력'이라고 하면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내 생각과는 달리 조금 더 진보적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일까?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는 남편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우연한 기회에 투자를 받아 자신의 '경영자형 인재'로서 '돈 버는 센스'를 위한 '네 가지 근본적인 시각'을 강의하는 컨설팅 회사를 세우게 된다.
과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서 서부로 갔다. 황금을 찾아서 인생을 바꾼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시대에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금을 찾아다닌 사람들이 아니라 마차를 판 사람들, 곡갱이를 판 사람들, 천막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판 상인들이다. 리바이스 청바지가 그렇게 생겨났다.
오늘날 유투브나 블로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글은 무엇일까?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글들이다. 그 비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돈 버는 법'을 알려주면서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은행원 남편으로부터 66일 동안 배운 내용으로 컨설턴트가 되어 강의를 하고 책을 써서 돈을 벌고 있다. 대단한 능력이고 운이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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