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삶이자 희망의 기록

낙타 2021. 6. 10. 02:45

우리는 사랑으로 거의 노력 없이 나아간다
에이드리언 리치

바람이 머리 위 텐트를 찢어 버리기 시작할 때
나는 일기에 썼다
우리는 지금 안다 고립된 채
그리고 지금은 이곳 높은 곳에서
함께 위험에 처했음을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힘에 손대지 않았음을

손가락으로 찢어 낸 일기장에 나는 썼다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푸른 불의 케이블이 우리의 몸을 묶고
는 속에서 모두 태운다 우리는 이보다 덜한 것을 위해
안주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꿈꿔 왔다
우리 모두의 삶

[공통 언어를 향한 꿈] 중에서


1926년에 워싱턴 주의 캐서린 몽고메리라는 퇴직 교사가 미국의 서쪽 산맥들을 타고 오르내리는 도보여행로를 제안 했다. 1930년대 이후 기존에 있던 길들이 합쳐지기 시작했으며 1968년 10월 2일에 공식적으로 의회 승인을 받았다. 1993년에 4285km의 전체 PCT 구간이 완성되었다.


2년 후. PCT를 걷고 있는 여자가 있다. 27살. 자신이 몬스터라고 부르는 폴크스바겐 비틀 같은 배낭을 메고 - 도움을 주는 남자들도 들기 버거워하는 무게다. - 은색의 금속 죔쇠에 붉은색 신발끈이 달린 갈색가죽의 등산화를 신고 PCT를 혼자 걷고 있다.


이름은 셰릴 스트레이드. 이혼하면서 새롭게 지은 성인 스트레이드 Strayed라는 단어의 '자기 갈 길에서 벗어나버렸다'라는 뜻 그대로 그의 삶은 지난 4년 7개월 동안 망가져왔다.

22살에 45살 엄마가 암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남편의 가정 폭력에 아이 셋을 데리고 집을 떠난 엄마. 여성학과 영문학을 배우던 딸과 함께 대학을 다니며 여성학과 역사학을 전공하던 엄마. 둘은 암 진단 이후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아 이별을 겪고 의붓 아버지는 남이 되고 동생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이 남자 저 남자 사귀는 불륜녀가 되어 남편과도 이혼한다.

그렇게 '가슴에 구멍이 뚫린 여자'는 우연히 본 PCT의 안내서에 마음이 이끌려 길을 나서게 된다. 목적지는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 경계선 위의 컬럼비아 강을 가로지르는 '신들의 다리 the Bridge of Gods'

변하기 위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걸으면서 인생을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 ...

사막과 눈길을 걷고 숲과 덤불 사이를 가로지르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초원을 지났다. 산을 오르내리고 벌판과 공터를 만났으며 도무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그저 가봤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곳을 지나갔다. 굶주림과 갈증, 피로와 권태, 상실감과 악천후가 있고 험난한 절벽과 좁은 길, 미끄러운 눈길이 있다. 야생동물의 위험도 있다. - 곰, 방울뱀, 불개미 떼.

"사실, 이건 그냥 걷는 것과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달랐다. 지옥을 걷는 일보다는 조금 덜한, 뭐 그 정도 수준이랄까."

등산화 한짝을 잃어버리고 새로 받은 등산화는 작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살은 다 까졌다. 발톱 여섯개가 빠졌다.

길에서 친절한 사람들, 수상한 사람들, 좋은 친구들도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신들의 다리'에 도착하여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그 이후의 이야기

트레일을 마치고 9일 후, 셰릴 스트레이드는 다큐멘터리 감독 브라이언 린드스트롬 (Brian Lindstrom)을 만난다. PCT 트레일을 가고 싶어 했던 브라이언과 셰릴은 연인이 되고 결혼하여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2006년 발표된 소설 “토치(Torch)”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며 호평을 받았다. 2012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여정을 기록한 “와일드 (Wild)"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와일드 중에서


후에 셰릴 스트레이드가 유명한 온라인의 조언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의 조언을 모은 책 “안녕 누구나의 인생 (Tiny Beautiful Things)”이 출판되었다.

2020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는 팟캐스트 “슈거 콜링(Sugar Calling)”을 운영하며 조언가로 활동한다.
인스타그램 cherylstrayed에서 만날 수도 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

셰릴 스트레이드는 트레일을 떠나며 세 권의 책을 베낭에 넣고 출발한다. PCT 안내서, 월리엄 포크너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 [공통된 언어의 꿈 The Dream of a Common Language].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만, 덕분에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혁명적인 시인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로는 [공통언어를 향한 꿈]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부산 시내의 도서관 검색에는 없는 이 시집이 놀랍게도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 [공통된 언어의 꿈]은 달랐다. 아주 여러 번 읽었고 솔직히 말하면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시집의 문장들은 내게 주문처럼 되어버렸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 내가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였던 셈이다. 이 책은 위안이 되어주는 오랜 친구였고, PCT 여행의 첫날 이렇게 손에 들고 있으려니 책을 가져온 것에 대한 손톱만큼의 후회도 들지 않았다. 비록 그 무게에 짓눌려 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고 할지라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이 내 성경책이라면 [공통된 언어의 꿈]은 사실상 나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펼치고 첫 번째 시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텐트의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위로 높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시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시의 제목은 바로 '힘Power'이었다. " - [와일드] 중에서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역사의 대지 퇴적물 안에서 살기

오늘 굴삭기가 허물어지는 대지의 옆구리에서 드러냈다
백 년 된 완벽한 호박 병 하나를
열 또는 우울증 치료제 이 기후의 겨울에
이 땅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물약

나는 오늘 마리 퀴리에 대해 읽고 있었다
그녀는 방사선 병으로 아프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제한 성분으로 인해 수년 동안 망가진 몸
그녀는 끝까지 부인했던 듯하다
자기 눈의 백내장의 원인을
그녀가 더 이상 시험관이나 연필을 쥘 수 없을 때까지
손가락 끝 피부가 갈라지고 고름이 나오는 원인을

그녀는 유명한 여성으로 죽었다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힘과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하면서

[공통 언어를 향한 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