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무엇을 하면 될까? 예전에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증기기관, 자동차, 비행기... 등등. 지금도 물론 새로운 물건은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그런 하드웨어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축으로 등장했다. 안드로이드,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등 그리고 그것들을 설계하는 프로그래머.
[은밀한 설계자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종족]은 프로그래밍의 역사와 프로그래머들의 세계를 파고든다.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우리의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다방면의 자료를 통해서 흥미롭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과 앱들.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프로그래머들은 무슨 목적으로 이런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을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인공지능이 재판을 보조하고 환자의 암 진단을 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까?
흔히 해커들, 컴퓨터 천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고정된 이미지.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다른 것은 전혀 모르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듯이 해치우는, 몇 날 며칠을 컴퓨터만 하는 주로 젊은 백인 남자다. - 간혹 여자도 있고 아시아계도 있지만 이 둘을 합한 아시아계 여자는 본 기억이 없다.
초창기의 프로그래머는 여자들이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했고 남자들이 그 일을 했다. 그래서 흑인 여자들도 초창기에 프로그래밍의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프로그래밍이 중요해졌고 그래서 남자들의 고소득 직업이 되었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에릭 슈미트. 이들은 젊은 나이에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회사를 차려서 세계의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우리가 가진 프로그래머에 대한 이미지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줄까?
패턴 매칭 Pattern match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투자자들이 예전에 그들이 보았던 성공적인 창업자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백인이고 컴퓨터에 미쳐 하버드 대학이나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한 남자들이다. 그래서 이런 패턴의 창업자는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패턴의 사람들이 다시 투자를 받고 성공하는 스토리가 반복되는 것이다. 흑인이나 여성들은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 중퇴하면 더 좋다 - 결혼하지 않은 젊은 백인 남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사실상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들이 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왜 문제일까?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같은 배경의 남자들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사실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직장을 다녀 본 적도 없고 다른 일을 한 적도 없다. 집단화시켜 단정 짓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들은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그리고 자신들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들은 프로그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을 보지 않는 것이다. 프로그램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문제도 고려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어 스마트폰을 들고 살고 좋아요에 목숨 걸고 사진을 찍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판사, 변호사, 검사, 의사, 장군들이 너무 많다. 인구 대비 비율로 따지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직종의 사람들이 정치라는 판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지하철을 탈 줄도 모르는 사람들만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로 정치 외에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트위터가 욕설 문제에 대처한 경우를 보자. 초창기 트위터에 사용자들의 욕설이 이유가 되었을 때 의외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트위터의 디자인팀은 모두 남자들이었고 남자들은 SNS에서 위협을 받거나 욕설을 듣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욕설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트위터 개발자들은 온갖 극단적인 발언들을 표현의 자유라며 내버려 두었고 욕설 등은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차별 문제도 있다. 2017년 여름, 28세의 구글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여성 프로그래머가 적은 이유가 사회적 편견 때문이 아닌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또 전 구글 엔지니어 켈리 엘리스가 자신이 당한 성희롱 사실을 트위터에 올리자, 어떤 기술직 근로자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우리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해왔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를 무엇보다 난자 제공자로 생각해 접근하도록 설계되어졌어요." 많이 듣던, 뭔가 그럴듯하고 과학적인 주장인 듯하다. 내가 진화론에 근거한 심리학이나 행동학을 혐오하는 이유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몇 만년 전에 매머드와 싸웠기 때문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사실은 원숭이에서 조금도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겠다.
이와 같은 프로그래머들과 설계자들의 생각은 분명히 그들의 제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나친 광고 수익을 노리는 문제도 있다.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 정보가 필요하고 페이스북이나 구글은 엄청난 개인 정보를 사용한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맞춤 광고를 보여 준다. 사용자의 시선을 끌어 돈을 버는 광고를 수입원으로 하면 프로그래머나 경영진은 사용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게 된다.
분명히 프로그래머들은 오늘날의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우리는 매일 그들의 결과물을 접하고 있다. 아니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프로그래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서비스를 만드는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알아야 속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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