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부산의 백양터널을 지나서 당감동 쪽으로 내려오면 도로에 '부산 정중앙'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부산 서면의 '메디칼 스트리트'에도 '부산 정중앙'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부산광역시의 정중앙은 부산진구 백양순환로95번길 47-10 북위35도 10분 4초, 동경 129도 2분 17초. 이곳이 정중앙으로 표지석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01년 동평초등학교 4학년이던 손모 군이 부산방송국 호기심천국에 부산의 정중앙이 어디인지 물어보는 엽서를 보낸 것에서 시작한다.
부산대 도시문제연구소가 5,000여개의 좌표를 설정하고 이를 지리정보시스템(GIS)에 입력하여 부산 정중앙을 찾아냈다. 그러나 최근 이 일대가 재개발 공사로 철거되어서 정중앙 표지석도 제 위치를 잃어버렸다. 인근의 공원으로 옮길 계획이라는 부산시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찾아가도 볼 수 없다.
한반도의 정중앙은 어디일까? 정중앙이 어디냐는 무엇을 근거로 삼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이평리 350(좌표 동경 127°51′, 북위 36°38′)이 남한의 지리적 중심지로 내세우기도 했다. 섬을 제외하고 육지만을 놓고 보면 북한 지역인 강원도 회양군 현리라고 한다. 또 경기도 연천군은 지적법 33조 지적측량 좌표원점에 따른 중부원점이 북위 38도선과 동경 127도선의 교차점인 전곡읍 마포리 일대가 국토 정중앙이라고 주장했다.
최후의 승자는 대한민국 헌법 3조에 근거해서 정해졌다. 헌법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이므로 섬을 포함하여 한반도의 4극 지점은 동쪽 독도, 서쪽 평안북도 마안도, 남쪽으로 제주도 마라도, 북쪽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이다. 이 네 점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그 한가운데가 동경 128˚02'02.5˚, 북위 38˚03'37.5˚인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 48번지다. 원래 주소는 양구군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면 도촌리 였는데 2021년부터 국토정중앙면으로 바꿨다. 근처에 국토정중앙천문대를 세우고 국토정중앙 조형물이 있다.
좀 더 넓게 나가서 대륙의 중심은 어디일까?
두명의 나이든 남자가 탄누 투바라는 나라를 여행하기로 목표를 세운다. 그 두 사람은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물리학자와 친구 랄프 레이튼이었다. 그들은 매주 함께 드럼을 쳤다. 어느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탄누 투바를 여행하기로 한다. 어릴 적 우표수집을 하던 리처드는 탄누 투바에서 발행된 삼각형과 마름모꼴의 우표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도에서 그 나라를 찾아보던 두 사람은 외몽골 부근에 자줏빛 점으로 표시된 이 나라의 수도인 '키질(KYZYL)'이란 이름에 흥미를 느낀 것. 뭐가 이상하다는 것일까? 영어 표기 KYZYL에는 모음이 없다. 황당한 이유다. 투바어 '키질' 혹은 '크질'은 '붉다'는 뜻이라고.
당시는 냉전이 한창인 70년대. 투바는 소비에트 연방 중 한 나라였고, 아시아의 오지였다. 게다가 이 나라는 핵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의 매장지역으로 여러모로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파인만이 자기 이름을 내세웠다면 러시아에서는 환영했을테다. 오히려 미국 정부에서 금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투바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투바어를 익혀 투바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차의 번호판에 '투바(TUVA)'라는 이름을 새기고, 집 전화번호도 '투바'로 바꿨다. '투사모(Friends of Tuva)'- 지금도 있다고 한다 - 를 결성했다. 투바를 방문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11년간 계속되었다. 호기심이 많고 유머가 있었던 파인만의 모습은 참으로 유쾌하다. 그 동안 파인만이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세번의 수술을 받았음에도.
파인만은 투바에 가지 못한 채 1988년에 사망했다. 그 다음해에 랄프는 투바를 방문한다. 11년간의 투바에 가기 위한 과정이 [투바.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에 담겨 있다. 정작 투바를 방문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짧게 언급될 뿐이다.
정중앙 이야기를 하다가 파인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 이유는 러시아 투바의 수도 키질이 아시아의 지리적 정중앙이기 때문이다. 키질에는 "아시아의 중심 조각 공원'이 있고 중심점을 표시하는 탑이 있다. 소박한 유목민들의 나라인 투바와 키질은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으로 인해 많이 알려졌다. 키질의 아시아 중앙탑에는 파인만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한다.
투바에는 아시아 중앙점 외에도 파인만이 감탄했던 '목구멍 노래' - '목 노래'라고도 번역 - 가 있다. 흐미, 후미, 허미, 회메이 등 조금씩 표기가 다르다. 이 '목구멍 노래'는 투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 아시아 초원지대의 몽골인들에게 널리 전승되고 있는 전통적인 창법이다. 목동들과 샤먼들이 부르는데 한 사람이 동시에 두가지 음을 낸다. 들어보면 신기하다. 유튜브에서 Tuvan throat singing 이나 Mongolian throat singing으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여정이 더 성스럽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이 이 책의 마지막에 붙어 있다. 나는 한 마디 더 붙이고 싶다.
'여행은 가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시작한다.'
p.s 내친 김에 더 나가보자.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우주를 '관측 가능한 우주'라고 하는데 지름 465억 광년 정도이다. 그 우주의 중심은 관측자다. 즉 우주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이다. 멋진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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