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걷다

라 스칼라의 아이다 - 부산문화회관 시네 오페라 초이스

by 낙타 2021. 10. 27.

부산문화회관
BSCC 시네 오페라 초이스(Cine Opera Choice)
2021. 9. 4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도 온라인으로 한다. 아이돌 그룹은 가상 공간에서 공연을 한다더라. 부산문화회관에서도 비대면 온라인 기반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무대에서는 영상을 틀어주고 관객들은 모여서 본다. 뭐지? 비대면 온라인 맞나? 물론 거리두기 등은 철저히 지킨다. 출연진의 코로나 감염으로 공연이 취소된 경우가 몇 번 있어서 이해는 된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맞추어 -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다. - 세계 각국의 유명 오페라극장과 페스티벌의 작품을 작곡가별로 선정했다. <BSCC 시네 오페라 초이스(Cine Opera Choice)>라는 타이틀로 2021년 베르디, 2022년 푸치니, 2023년 모차르트. 이렇게 장기 상영할 예정이다. 시네마 라이브(Cinema Live)형 공연 실황 상영으로 오페라를 선보인다. 편집없이 무대 전체를 한 시점에서 계속 보여주어 공연을 직접 보는 느낌이 든다. 아이다를 보는 중에는 무척 몰입했다.

올해의 베르디 오페라는 5월 1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itan Opera, The Met) <라 트라비아타>, 6월 12일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의 2019년 공연작 <리골레토>에 이어, 9월에는 라 스칼라의 <아이다>를 보인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 시대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전 세계의 유명 극장의 비싼 오페라를 싸게 보는 좋은 기회다.

<아이다>는 주세페 베르디가 이집트 국왕의 의뢰로 작곡한 오페라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과 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공연을 위해서다. 베르디는 당시 나이가 58세로 은퇴한 상태로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흥미를 느끼지 못한 베르디는 카이로 측의 제의를 여러 번 거절하였는데 줄거리를 읽고 마음을 바꾸었다. 원래의 시나리오는 프랑스의 이집트 고고학자가 썼다. 그러나 전쟁 등의 이유로 오페라하우스의 개관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1871년 12월 24일 카이로에서 초연되었다. 유럽에서는 1872년 2월 8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 자신의 지휘였다. 이 연주는 38번의 앙코르를 받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베르디는 거액의 작곡료 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의 판권도 받아냈으니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있었다.

<아이다>가 이집트의 국가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져서 편파적인 내용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국민들을 노예로 끌고 오고, 에티오피아의 저항을 억누르려는 출정식을 "이기고 돌아오라"며 장엄하게 떠 받드는 장면 등이 그렇다. 오리엔탈리즘도 거슬리지만 절절한 '러브 스토리'와 음악 때문에 참을 수 있다.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당시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지어졌다. 지금도 오페라 무대로서의 명성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될 것이다. <노루마>, <오텔로>, <팔스타프>,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 여러 명작의 초연 무대이기도 하다. 마리아 칼라스가 바로 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노래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클라우디오 아바도,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리카르도 샤이 등 역대 명 지휘자가 지휘와 음악 감독을 맡았다.

시네 오페라 초이스의 아이다 영상물은 베르디가 아이다를 초연한 <라 스칼라>극장에서의 1963 버전이다. 굳이 버전을 붙여서 부르는 이유는 이 버전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역사적 제작물”로 불릴 만큼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 버전의 오페라는 리바이벌되어 2014년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라 스칼라의 <아이다 1963>은 최고의 정통 오페라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작품으로서 관객들의 찬사를 받은 명작이다. <아이다> 공연에서는 개선 장면에 코끼리가 등장하는 등 화려한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라 스칼라의 <아이다 1963>은 그런 부가적인 볼거리를 삭제하고 아이다와 암네리스, 라다메스의 사랑과 갈등, 비극적인 결말에 오롯이 집중한다.

당시 최고의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떨치던 릴라 데 노빌리(Lila De Nobili) 무대와 의상도 독보적이다. 왕궁과 신전 등이 배경이지만 현대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무대를 볼 수 있다. 공간이 잘 설계되어 각각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결이 자유스러운 무대에 나 같은 문외한도 감탄했을 정도다. 인물의 동선이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서 시선이 지루하지 않다. 의상도 고대 이집트의 의상을 가져오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면서 각각의 인물들의 역할을 잘 드러내는 의상이다. 특히 사제와 신관들의 의상이 아주 특이했다.

시네 오페라 초이스로 보는 영상물은 2015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을 촬영한 것이다. 메가박스에서 특별 콘텐츠로 2015~2016년에 상영되기도 했다.

베르디가 직접 지휘했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봉을 쥐는 주빈 메타는 아이다와 인연이 깊다. 인도 출신의 지휘자 주빈 메타는 1965년 아이다로 오페라에 데뷔했다. 50여년 동안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지휘자의 관록을 볼 수 있는 무대다. 연주자나 지휘자들은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이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한다. 손과 머리를 많이 써서 오래 산다는 설도 있다. 재즈나 록 뮤지션들이 단명하는 - 술과 마약 등등 때문에 - 것에 비하면 건강에 좋은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인상 깊었던 가수는 아이다 역의 "크리스틴 루이스"가 있다. 크리스틴 루이스는 아이다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는다. 목소리와 연기뿐만 아니라 가냘픈 외모도 노예로 끌려온 에티오피아 공주에 잘 맞는 듯하다. 크리스틴 루이스는 미국계 흑인 리릭 소프라노이다

암네리스 공주역의 그루지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아니타 라흐벨리쉬빌리 Anita Rachvelishvil"도 기억에 남는다. 이집트 공주로서의 당당함이 있으면서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다에 대한 질투 등을 잘 표현했다. 마지막 부분의 라다메스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호소하고 신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 외에 사제 역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다에서는 사제의 역할이 은근히 중요하며 비중이 높다. 특히 라다메스에게 죄를 묻고 선고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후덜덜한 장악력이었다.

파울로 코넬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오직 4가지 이야기만이 존재한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권력 투쟁, 그리고 여행이다. 서점에서 파는 책은 모두 이 4가지 주제를 다룬다." -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아이다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라다메스는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반한 죄로 신전 지하에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조국을 위해 연인을 속이고 아버지와 도망쳤던 아이다는 라다메스가 갇히게 될 신전의 지하에 숨어든다.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그 위에서는 암네리스 공주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승자와 패자로 가르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누가 행복하고 누가 불행할까?

공연 후에 같이 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대화였다. "사랑이 뭣이라고...".

12월 4일에는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맥베스>가 상영된다.

부산문화회관에서는 NT-Live 프로그램을 상영하기도 했다. 영국 국립극장 내셔널 시어터가 영국 연극계의 화제작을 라이브로 촬영한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계획된 상영이 다 끝났는데 2022년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