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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만나다

길에서 만나다. 노래 - 영도다리의 굳세어라 금순아

by 낙타 2023. 6. 25.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부산의 원도심인 남포동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거주 지역이었다. 그 당시 제일 잘 나가던 동네라는 의미. 영도까지 전차가 다녔던 이유다. 영도다리로 이어진 영도에는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조선소들이 있었다. 최근까지 한진조선소가 있었고 깡깡이 마을의 수리조선소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영도구는 자치단체로서의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인구가 줄고 노령화되는 지역이 되었다. 흰여울문화거리라든지 여러 가지로 영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이다.

 

해방 이후 부산남항으로 들어오는 수산물들로 자갈치 시장이 생겼다. 일본인들이 급하게 팔고 간 물건들이 거래되던 국제시장은 미군 부대의 군수품들이 몰래 팔렸다. 깡통 시장이 그때의 흔적이다. 노래 '경상도 아가씨' 가사 중에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수 하더라도 살아보세요"라는 가사가 그 당시의 모습을 전해준다.

 

피난민들로 부산의 인구가 삽시간에 2배로 늘었다. 그들은 용두산과 증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판자촌을 이루며 살았다.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40 계단과 영도다리를 배경으로 하는 노래가 '경상도 아가씨'와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유라리광장의 조형물

영도다리는 1932년 만들어졌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명물이 되었다. 잃어버리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그래서 나왔으리라. 지금 있는 다리는 기존의 다리를 철거하고 복원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다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영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현인 동상과 노래비가 있다. 부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영선동에서 보낸 현인은 '신라의 달밤'으로 인기 가수였다. 1950년 전쟁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발표했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에도 삽입되었다.

현인 노래광장

송도해수욕장의 중간쯤에 가면 현인의 동상과 노래비가 서 있는 현인노래광장이 있다. 현인가요제도 개최해서 신인가수들의 등용문 역할도 한다고.

 

참고로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는 카페로 변했다.

국제시장의 꽃분이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