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수 하더라도 살아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눈물만이 흘러 젖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등산이 정상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는 재미로 올라가는 목적지향이라면 트레킹은 도중에 있는 자연과 사연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레킹을 다니면서 자료가 좀 쌓이다 보니 이런 글감도 생각난다.
중앙동, 남포동, 광복동이 지금은 화려한 쇼핑몰과 카페로 가득하지만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40 계단이다.
40 계단은 1909년 ~1912년 사이에 생겼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물 밀 듯이 내려온 피란민들은 산 위에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고 지고 업고 손잡고 피난을 떠나며 헤어질 경우에 대비해서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날 기약을 했다. 당시 영도다리는 다리 상판을 들어 올리는 신기한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부산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피난민들이 기억할 만한 장소는 영도다리 뿐이었을 거다.
영도대교 아래 유라리광장의 조형물 최근에 다시 가보니 밑에 사진은 철거되고 없다. 영도대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상판을 들어올리는 행사를 한다.
피난민들은 부산항이나 부산역에서 노무자로 일하며 혹은 국제시장이나 자갈치 시장 등에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 나갔을 테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그들은 40 계단에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란생활의 고달픔과 향수를 달랬다. 지금은 고층 건물들로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당시에는 40 계단에서 영도 다리가 보였다. 원래의 40 계단은 1953년에 대화재로 본래 모습을 잃었는데 남쪽으로 25미터 떨어진 계단을 40 계단이라고 부른다.
1951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 가 크게 유행하면서 유명해졌다. 계단 중간의 조각 작품은 '아코디언 켜는 사람' 이며 힘든 생활 속에서도 낭만을 간직했던 모습을 표현했다. 조각상 근처에 가면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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