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축구는 왜 오류투성이일까 - 데이터로 보는 축구

낙타 2025. 12. 11. 15:46

스포츠에서 진실은 사람들의 믿음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진실은 사람들에게 이점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 빌 제임스

축구 좋아하시죠? 주말 밤마다 TV 앞에서 소리 지르잖아요.
"아니 저걸 못 넣어?! 내가 차도 넣겠다!" 혹은 "감독 잘라!! 전술이 저게 뭐냐!"
근데 여러분, 우리가 술자리 안주 삼아 떠드는 '축구 상식'의 90%는 사실... 다 헛소리랍니다. (충격)

빅데이터 시대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감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는 어마어마하게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동합니다. "왜 저렇게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늘 그렇게 해왔어."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축구는 왜 오류투성일까? (The Numbers Game)] 는 축구 덕후들의 낭만을 데이터라는 몽둥이로 무참히 박살 내는 책입니다. 읽다 보면 "아, 그래서 우리 팀이 맨날 지는구나..." 하고 강제 깨달음을 얻게 되죠.

1. 코너킥 찰 때 제발 일어나지 마세요. 어차피 안 들어갑니다.

볼 없이는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볼을 소유하고 있으면 상대는 절대 득점할 수 없다. - 요한 크루이프

우리 팀이 코너킥 얻으면 어떻게 하시나요? 일단 엉덩이 들썩거리면서 "골! 골!" 외치죠?
제발 앉으세요. 다리 아픕니다.
데이터 까보니까 코너킥 득점 확률이 얼마인지 아세요? 고작 2.2%입니다.
로또 5등 당첨될 확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에요. 차라리 "제발 역습만 당하지 마라"라고 비는 게 낫습니다. 코너킥은 사실상 득점 기회가 아니라,  '우리 수비수들 다 집 나가게 만든 뒤에 공 뺏겨서 역습당하기 딱 좋은 찬스' 거든요.
우리가 코너킥에 환장하는 건, TV 하이라이트에서 멋진 헤딩골만 보여줘서 그래요. 이걸 있어 보이는 말로  '가용성 편향'이라고 합니다. 뇌한테 속은 거죠.

2. 골은 '기적'이고, 승부는 '동전 던지기'다

우연에도 논리가 있다. - 요한 크루이프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은  '골의 희귀성(Scarcity of Goals)'입니다.
1888년부터 지금까지 100년 넘게 축구 규칙이 바뀌고 선수들 피지컬이 괴물처럼 변했어도, 경기당 평균 득점은 약 2.66골로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농구는 24초마다 득점 기회가 오지만, 축구는 90분을 기다려도 기회가 안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축구에서 골은 점수가 아니라  '기적적인 사건(Rare Event)'입니다.
이걸  '푸아송 분포'라는 수학 공식에 넣어보면, 축구 스코어는 1:0이나 1:1이 나오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문제는 골이 너무 희귀하다 보니 '운(Luck)'이 지배한다는 겁니다.
90분 내내 슈팅 20개 때린 강팀이, 슈팅 1개 때린 약팀의 '뽀록 골' 한 방에 지는 유일한 스포츠가 축구입니다. 승패의 50%는 운입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승부의 절반은 사실 동전 던지기와 같다는 뜻이죠.

푸아송 분포란? "로또 당첨 횟수를 예측하는 수학"
정해진 시간 동안, 평균적으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 '몇 번' 발생할지 확률을 계산하는 공식입니다. 희귀하고 불확실한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죠. 19세기 수학자 시메옹 드니 푸아송은 축구를 본 적이 없지만, 오늘 밤 토트넘 경기가 몇 대 몇으로 끝날지 이미 200년 전에 예측해 두었습니다.


3. 호날두 살 돈으로 '구멍'이나 메워라. (O링 이론)

축구에서는 득점을 올려야만 할 때가 있다. - 피에르 앙리

"그래도 비싼 공격수 사 오면 이기겠지?" 천만에요.
농구는 조던 형 혼자 캐리 하는 '강한 고리' 게임이지만, 축구는 '누가 누가 덜 못하나' 대결인 '약한 고리' 게임입니다.
이 책에서는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예로 듭니다.
수조 원짜리 우주선이 엔진 결함으로 터졌을까요? 아뇨, 추운 날씨에 고무링(O링) 하나가 얼어서 터진 겁니다.
축구팀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1,000억 주고 슈퍼스타 공격수를 사 와도, 수비수 중 한 명이 'O링(구멍)'이면 그 경기는 집니다.
그러니까 구단주님들, 제발 비싼 공격수 그만 사 오고 제일 못하는 수비수부터 좀 어떻게 해봐요...
데이터상 무실점의 가치는 승점 2.5점이지만, 1 득점의 가치는 승점 1~1.5점에 불과하거든요.

O링 이론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챌린저호 폭발 사고 조사 위원회(로저스 위원회)의 핵심 멤버였으며, 이 사고의 원인이 'O링'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장본인입니다.
파인만은 복잡한 항공우주 공학 보고서 대신, 생중계되는 청문회장에서 아주 간단한 실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컵에 담긴 얼음물에 O링의 고무 조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잠시 후 꺼낸 고무는 탄력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발사 당일 날씨가 영하에 가까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고무는 차가운 온도에서 탄성을 잃습니다. 틈새를 막아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파인만은 보고서 마지막에 아주 유명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성공적인 기술을 위해서는 홍보(Public Relations)보다 현실(Reality)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연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For a successful technology, reality must take precedence over public relations, for nature cannot be fooled.)


4. 리그 우승? 어차피 '연봉' 순서대로 갑니다

볼은 둥글다. 그래서 경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 제프 헤르베르거

"리그 우승은 누가 할까?" 이건 너무 쉽습니다.
리그는 수십 경기나 치르기 때문에 운빨이 거의 제거됩니다. 여기선 자본주의가 깡패입니다. 잉글랜드 리그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구단의 '연봉 총액'과 '리그 순위'의 상관관계는 무려 90% 였습니다. 시즌 시작 전에 선수들 월급 명세서만 보면 순위를 90% 맞힐 수 있다는 소리죠.

5. 그럼 감독은 뭐 하냐고요?

우리는 좌파적 축구를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한다. - 팹 과리디올라

놀라지 마세요. 감독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고작 10~15%입니다.
팀 성적 꼬라박아서 감독 자르고 새 감독 오면 3연승 하죠? 언론은 명장이라고 난리 치지만, 데이터 과학자들은  '평균으로의 회귀'라고 부릅니다. 바닥을 찍었으니 원래대로 돌아오는 타이밍에 감독이 바뀐 것뿐입니다. (주식 물려보신 분들은 아시죠? 내가 손절하면 오르는 그 원리...)
감독의 진짜 역할은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라, 비싼 선수님들 멘털 관리해 주는 베이비시터이자 리스크 관리자인 겁니다.

그러나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이 10~15%라고 해서 축구 감독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의미 있다고 해서 모두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셀 수 있는 것이 모두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먼저 구단의 연봉 총액에는 감독과 코치진의 연봉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 구단은 비싼 연봉을 주고 그만큼 더 유능한 감독을 고용합니다.
축구는 작은 차이로 결정되는 스포츠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감독입니다. 축구에서 순수한 운에 의해 좌우되는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결과가 감독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럼 도대체 뭘 보고 축구를 봐야 하냐?" -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최신 축구 데이터 이론.
스코어는 거짓말을 해도, 찬스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xG(기대 득점)를 보세요.
xG는 "그 위치에서 찼을 때 들어갈 확률"입니다. 우리 팀이 졌어도 xG가 높았다면? "과정은 좋았으니 다음엔 이길 거야"라고 희망 회로 돌려도 됩니다.
참고로 손흥민 선수는 xG보다 훨씬 많은 골을 넣는 통계 파괴자입니다. 이게 바로 '월클'의 증거죠.


"축구의 절반은 기술, 나머지 절반은 우연이다. 축구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그러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인생도 축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인생에서 많은 부분은 우연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80~90%는 먹고 시작합니다. 출발점이 다른 거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나머지 10%는 작은 부분이지만 우리가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차이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O링 이론처럼 대박을 노리는 것보다, 내 인생의 구멍이 어디인지 찾아서 그거부터 때우는 게 성공 확률 높이는 가성비 있는 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