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글쓰기 - 재미있는 글 쓰는 법!

낙타 2026. 1. 2. 17:21
걱정 마, 넌 전에도 썼잖아. 지금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하나만 써봐. Do not worry. You have always written before and you will write now. All you have to do is write one true sentence. Write the truest sentence that you know."— 어니스트 헤밍웨이

[기자의 글쓰기] 저자 박종인은 기자 출신이다. 왜 기자들은 글을 잘 쓸까? '기자의 글쓰기'는 무엇이 다를까?

 

기자 출신 작가는 문장이 간결하고 정보 전달력이 탁월하다. 동시에 문장 속에 깊은 통찰을 담아낸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 김훈 작가가 대표 사례다. 그는 주어와 동사 위주로 극도로 절제된 단문을 구사하며 힘 있는 문체를 보여준다. 주요 작품으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라면을 끓이며]가 있다.

 

현대 문학 문체를 완전히 뒤바꾼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역시 기자 출신 작가 원조 격이다. 그는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사 수습기자로 일하며 글쓰기를 훈련했다. 당시 이 신문사에는 전설적인 '스타일 가이드'가 있었다. 그는 평생 이 규칙을 "글쓰기 세계에서 배운 가장 훌륭한 규칙"이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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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밍웨이를 만든 4대 핵심 원칙 

당시 캔자스시티 스타 스타일 가이드는 약 110개 규칙을 담았다. 그중 헤밍웨이에게 큰 영향을 준 4가지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짧은 문장을 사용하라 (Use short sentences): 길고 화려한 문장을 지양하고, 정보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려 문장을 간결하게 끊어 쓰게 했다.

첫 단락을 짧게 유지하라 (Use short first paragraphs): 독자 시선을 빠르게 사로잡고 핵심 내용을 즉시 전달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강렬한 언어를 구사하라 (Use vigorous English): 모호하고 힘없는 표현 대신, 의도가 분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단어를 선택하도록 요구받았다.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표현하라 (Be positive, not negative): "싸지 않다" 대신 "저렴하다"라고 쓰고, "명확하지 않다" 대신 "혼란스럽다"라고 서술했다. 무엇이 '아닌지'보다 무엇이 '맞는지' 직접 드러내는 방식이다.

2. 형용사 절제와 '동사' 중심 글쓰기 

기자 시절 그는 선배 에디터들로부터 불필요한 수식어를 제거하는 혹독한 피드백을 받았다.

형용사 삭제: "웅장한(magnificent)", "아름다운(splendid)" 같은 주관적이고 사치스러운 형용사를 쓰지 못하게 했다.

경제적 글쓰기: "화요일 2시에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다"를 "장례식은 화요일 2시다"로 줄였다. 이런 '단어 다이어트'를 통해 글 밀도를 높였다.

3. 문학으로 이어진 '빙산 이론(Iceberg Theory)' 

이러한 저널리즘 훈련은 훗날 헤밍웨이 문학 정수인 **'빙산 이론'**으로 발전한다. 팩트(문장)는 수면 위에 드러난 1/8에 불과하지만, 기자가 생략한 나머지 7/8의 깊은 의미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여든날 하고도 네 날이 지나도록 그는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 [노인과 바다] 첫 문장

 

글은 상품이다 박종인은 글을 '예술'이 아닌 '상품'이라 정의한다. 독자는 소중한 시간을 지불하고 글을 읽는 소비자다. 나아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읽을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소망이...) 비문이 있거나 논리가 꼬인 글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불량 상품'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보도 재미가 없으면 시장에서 외면받는 재고 상품이 된다. '기자들의 글쓰기'가 강력한 이유는 단순하다. 신문사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독자 눈길을 끌고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도록 훈련한 결과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칼의 노래] 첫 문장. 김훈

 

문장은 짧게: 단문을 써라. 문장을 짧게 끊을수록 정보 전달력은 높아진다. 마침표가 많을수록 글은 단단해진다.
형용사를 지우자:
'진짜', '너무', '굉장히'만 지워도 문장이 고급스러워진다. 김훈은 주어와 동사만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리듬 있게:
마음속 소리를 설계하라. 글은 눈으로 읽지만 뇌에서는 소리가 되어 울린다. "하였다"보다 "했다"가 자연스럽다. 입으로 읽었을 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나쁜 문장이다.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리듬을 타야 독자에게 부드럽게 감긴다.
구체적으로:
팩트는 신성하다. 진실(truth)이 아니라 팩트(fact)를 담아야 한다.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굉장히 아름답다' 대신 아름다운 이유를 써라. '난리 났다'라고 호들갑 떨지 말고 무슨 난리가 났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고치고 또 고치라: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Every first draft is shit.)"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결말을 무려 47번이나 다시 썼다. 왜 그렇게 많이 고쳤을까? 1958년 《파리 리뷰》 인터뷰에서 그는 "그저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Getting the words right)"라고 답했다. 그는 감정을 과잉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깊은 잔상을 남길 '가장 진실한 문장'을 찾으려 단어 하나하나를 깎고 다듬었다.

수많은 수정 끝에 선택된 최종 결말은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건조함이 오히려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왔다.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After a while I went out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 무기여 잘있거라. 마지막 문장. 어네스트 헤밍웨이

 

우리 역시 글이 엉망이라고 좌절할 필요 없다. 헤밍웨이도 그랬으니까. 김훈은 [칼의 노래] 첫 문장을 쓸 때 '꽃이'와 '꽃은'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꽃은'에는 주관적 정서가 담기지만, '꽃이'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자의 글쓰기'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시인은 시인의 글쓰기가 있고, 작가는 저마다의 문장이 있다.

 

이 글을 쓰며 AI를 활용해 자료를 찾고 문장을 정리했다. AI는 글을 참 잘 쓴다. AI 시대에도 우리가 직접 글을 써야 할까? 짧은 글 하나에 며칠씩 고민해야 할까?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교하게 정리하고 타인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나를 증명하고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파괴력 있는 도구가 바로 '글'이다.

AI가 유려한 문장을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나만의 팩트'는 더 귀해진다. AI는 정보를 짜깁기하지만, 오늘 내가 마신 커피 온도와 이웃이 흘리는 한숨 소리는 오직 나만이 기록할 수 있다. 챗GPT가 모르는 '구체적인 장면'을 쓰자. 그것이 AI 시대 글쓰기 생존 전략이다.


'기자의 글쓰기'에서 저자는 '~의, ~것'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한 챕터에서 '~의,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글쓰기 책에서는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나도 이 글에서 인용외에는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뿌듯하다. '~의'는 어쩔 수 없이 몇번 사용했다. 저자도 [기자의 글쓰기] 제목에서 '~의'를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