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 그것은 이역의 낯선 마을에서 아침에 홀로 깨어날 때다." - 20세기 초, 영국의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
동양과 서양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지만 세계관의 설정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는 이 세상을 연극 무대로 비유한다. 셰익스피어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연극 무대, 세상 모든 남녀는 단지 배우일 뿐. 무대에 등장하고 그리고 퇴장하지요." [당신 뜻대로] 2막 7장에서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다." - [맥베스] 제5막 제5장에서
세상이 무대이며 인생은 잠깐 등장하는 배우라는 생각은 셰익스피어의 창작은 아니다. 원전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60년 경에 태어나서 380년 경에 사망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무대, 삶은 한 편의 연극,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나네."
연극이 발달했던 그리스에서 자연스러운 발상일 것이다.
동양에서는 세계를 길로 이해한다. 인생은 길 위를 걸어가는 나그네다. 이 점을 묘사하는 문장, 시는 너무 많아서 굳이 예를 들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내가 좋아하는 시는 조병화 시인의 '오산 인터체인지'이다.
오산인터체인지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는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燈)은, 덴막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 속에 초초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들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곳
자, 그럼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삶과 죽음의 갈림길, 사랑이 갈라서는 장면을 시인은 인터체인지라는 도시적인 길로 이야기한다.
세계와 삶에 대한 은유의 차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다니며 축제에서 연극을 공연했던 문명과 끝없이 이어지는 땅을 앞에 두고 그 속으로 가야 했던 문명의 차이일까?
[여행하는 인간]에서 문요한은 오히려 먼 옛날의 인류에게는 삶 자체가 여행이었다고 한다. 인류 대부분의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이동의 역사였다. 그러한 이동성을 우리는 뼛속 깊이 물려받았다. 우리에게 여행은 본능이다. '생각하는 인간' (Homo Sapience),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Homo Loquens),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Homo Faber)이라는 특성을 가진 것처럼, '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라는 고유의 특성이다.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도 이제 흔해졌다. 해외 여행객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2,871만 명이었다가 코로나 기간에 줄었지만 이후에 다시 빠르게 일반화됐다. 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던 한국인의 '여행하는 인간'의 특성이 깨어났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갈망하는가?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여행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문요한은 '새로운, 휴식, 자유, 취향, 치유, 도전, 연결, 행복, 유연함, 각성, 노스탤지어, 전환'이라는 열두 개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개인적인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여행을 통해 우리의 내면과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의 심리학', '여행으로 보는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 항상 좋은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나쁜 여행도 있다.
첫째는 쾌락으로서의 여행이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빨리 취하기 위해 흥청망청 술을 마시듯이, 복잡한 현실을 잊으려고 게임을 하고, 하룻밤의 유흥을 위해 이성을 찾고, 한 방을 노리며 내기와 도박에 빠지듯이 여행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 여행은 현실의 도피가 되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과시가 되며, 현실에서 발을 떼게 만드는 중독이 돼버린다. 그러나 모든 쾌락이 그렇듯이 점점 더 강한 쾌락이 주어져야만 한다. 여행이 휴식이나 충전이 되지 않고 일상이 더욱더 초라하고 힘들게 느껴진다.
나쁜 여행에는 노동으로서의 여행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여행이다. 비행기 좌석에서 쪽잠을 자고 도착하자마자 강행군을 시작한다. 한 군데라도 더 보기 위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고 밤늦게 버스에서 졸면서 숙소로 돌아온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기록의 과잉은 여행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러한 현상을 꼬집는다. 노동 윤리가 냉혹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일수록 사진 찍기에 더욱 집착한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은 휴가를 가거나 일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끼는데, 사진 촬영을 열심히 하면 일하는 느낌이 나서 안심한다. 사진 촬영은 일중독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빠듯한 스케줄로 여기저기 이동하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이유가 이해된다. 이제 나도 여행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겠다.
부산의 광안리 바닷가에서 본 불꽃축제 현장이 생각난다. 화려한 불꽃이 가득한 장관이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현장의 멋지고 거대한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서 조그만 액정 화면으로 보고 있었다. 멀리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오고,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인스타그램 인증샷,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촬영하느라 그 멋진 광경을 거대한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직관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노동으로서의 여행이 아닐까?
마음이 닫힌 여행도 있다. 여행을 하면 저절로 견문이 넓어지고 의식이 확장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누구나 여행을 통해 생각과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가 얼마나 변화하느냐는 변화할 기회에 대해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행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변화는 일어난다. 그러니 여행 갈 때 고추장과 김치는 그만 가져가자. 여행 가서 단 며칠 김치 안 먹는다고 탈 나지는 않는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즐겨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좋은 여행이란 무엇일까? 멋진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새로움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더 선호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새로움을 싫어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인의 성향이나 정도는 유전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도파민 수용체를 만드는 'DRD4'라는 우전자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과 연관이 깊다. DRD4 유전자의 7R이라는 대립형질을 가진 사람들을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무척 강하다. 이 유전자를 '새로움 유전자' '호기심 유전자' '자유 유전자' '방랑자 유전자'라고 부른다.
서양인은 경우는 약 20퍼센트가 7R 대립형질을 가지고 있고 인류 대이동의 가장 먼 정착지인 남아메리카의 사람들은 이 대립형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아프리카인들은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 모험가 혹은 여행자의 운명은 유전자에서 어느 정도 결정된다. 이러한 성향은 삶의 다양한 부면에서도 작용한다.
행동과학 분야의 전문 칼럼니스트인 위니프레드 갤러거는 [NEW]에서 '새로움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눴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사람 Neophilia, 새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 Neophobia, 새로움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물론 유전자 하나만 가지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새로움에 대한 태도는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결정돼 있지만 성향이란 변화한다. 후천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
작가 스탕달은 1817년 1월에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예술과 열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천상의 감각을 경험했다. 베를린 사람들이 중추라고 부르는 산타 크로체를 떠날 때 내 심장은 지나치게 빨리 뛰고 있었고, 몸에서 생기가 거의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스탕달처럼 미술관에서 갑작스럽게 정신적인 불안정감이나 신체적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울음, 구토, 발열, 호흡곤란, 심한 떨림, 심지어 환각을 경험하고 괴성을 지르고 기절까지 한다. 이 현상을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해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무리 유명한 미술 작품을 봐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돈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그저 낡은 그림일 뿐이다. 마크 트웨인은 '최후의 만찬'을 보고 이렇게 감상을 남겼다.
"그것은 사방에 흠집이 나고 망가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은 더러워지고 색은 바랬으며, 그림 속 사도들은 반세기도 더 전에 그곳을 마구간 삼아 점거했던 나폴레옹의 만들에게 발길질을 당했다. 그러니 이제 한때 기적처럼 굉장했던 그림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시몬은 누추해 보이고, 요한은 아파 보이고, 흐릿하게 지워지고 손상된 나머지 절반의 사도들의 안색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리처럼 지지리도 교양 없는 불한당들에게 그것은 도무지 그림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물건이다."
정말 솔직한 감상평이다. 그 시대의 미국 작가 중에서 작품에서 유럽을 고물상이라고 부른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마크 트웨인인지 기억이 안 난다. 이처럼 유명한 예술 작품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마크 트웨인 장애'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양극단의 반응은 그림이나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취향에 적용될 수 있다. 자연 풍경을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 신혼여행을 떠난 남녀는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갑자기 이 혼란에서 벗어났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이 붉은 화강암이 피를 흘리는 듯한 벽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만을 발견했다. 푸른 바닷속에 그 진홍색 바위들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잔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줄리앙!”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경탄으로 감동하여 목이 메었다.
그리고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줄리앙이 깜짝 놀라 “왜 그래, 여보?” 하고 물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뺨의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으며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신경 때문이에요……. 저도 모르겠어요……. 감동했던 거예요. 너무 행복해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게 돼요.”
줄리앙은 여자의 이러한 흥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열광이 재난처럼 마음을 움직이고, 붙잡을 수 없는 감정이 마음을 변화시키고, 기쁨이나 절망으로 미칠 듯하게 만들어주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미칠 듯이 전율하는 이 존재의 동요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눈물이 그에게는 우습게 보였으며, 험한 길에 온 정신이 팔려 “당신의 말에나 신경을 쓰는 것이 좋을 거요”라고 말했다. -여자의 일생. 모파상
감동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정신이 둔해지고 감각이 닳아서 어떤 그림이나 풍경을 보아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여행이 무슨 소용 있을까. 심지어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자기가 먹던 음식보다 못하다고 불평을 한다면.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여행자의 등급을 나누었다.
"사람들은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구분한다.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는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눈먼 자들이다. 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실제로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등급의 여행자는 관찰한 결과에서 그 무엇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그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체험한 것을 자신 속에 가지고 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 끝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몇몇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관찰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동화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기필코 다시 되살려 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여행자에 대한 이 다섯 부류에 따라 대체로 모든 사람들은 사람의 모든 여정을 지나간다."
문요한은 니체의 분류에 착안해서 여행의 등급을 6단계로 나눴다.
- 1단계 - 둘러보는 여행 :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재빨리 사진을 찍고 이동한다.
- 2단계 - 관찰하는 여행 : 자세히 살펴보고 기록하는 여행,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더욱 체계화시켜 나간다.
- 3단계 - 체험하는 여행 : 새로운 맛과 예술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오감과 신체감각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 4단계 - 각성하는 여행 :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대상과 경험으로 새로운 세계와 교류하며 자기를 대면하여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다.
- 5단계 - 체득하는 여행 : 여행의 경험이 삶과 연결 배우고 깨달았던 것을 실천하고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 6단계 - 삶으로의 여행 : 여행과 삶이 하나가 돼 삶을 여행으로 보고 살아간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평생 자기 길을 찾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
삶을 하나의 여행으로 보고 삶으로의 여행을 떠난 사람이 '여행하는 인간'이다. Homo Viator은 '그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the person on his way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진정한 여행자란 세계 각국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캐리어에 수화물 스티커가 많이 붙어 있다고 멋진 여행자가 아니다. '평생 동안 자기 길을 찾아 길 위에 있는 사람'이 진정한 여행자. 여행하는 인간이다. 세상은 길이고 삶은 여행이다.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 니체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마지막 편에 나오는 시 ‘항해’를 소개한다. 보들레르의 여행론이자 인생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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