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백희성)- 집에 대한 생각

낙타 2026. 6. 2. 18:07

모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연이 있듯이 집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 사연을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이에 집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오래된 집은 그만큼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줄 사람을……. 때론 몇 십 년, 때론 수백 년을 그렇게 기다릴 것이다.

어느 날 날아온 5%의 역설, 그리고 우리들의 집 이야기

며칠 전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임대료를 법정 한도인 5% 꽉 채워서 인상하겠다는 통보였습니다. 법적으로 정해진 권리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최대 5% 제한선'이, 어느새 주인들에게는 '당연히 올릴 수 있는 법적 권리'로 변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그 이상은 주어야 한다는 최저임금이 "이것만 주면 된다"는 공시임금처럼 쓰이는 것처럼 말이죠.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가 도리어 발목을 잡는, 전형적인 '제도의 역설'입니다.

이쯤 되니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에게 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히 비바람 피하고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뜨거운 경제 문제이자, 한 사람의 사회적 성취와 계급을 증명하는 거대한 상징물이죠.

하지만 동시에 외부의 치열한 경쟁과 비교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유일한 요새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현관문 안쪽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집이란 "거친 풍파를 막아주는 정서적 요새이자, 내 가치를 증명하는 증명서"라는 이중적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건축가가 오래된 저택을 찾아간 이유

최근 읽은 《빛이 이끄는 곳으로》라는 소설은 이런 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10여 년간 활동한 건축디자이너인데, 책 서두에 아주 흥미로운 경험담이 나옵니다.

나는 파리에 산다. 길을 지나다가 문득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곤 했다. "당신의 집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부터...." 간혹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그 집에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많은 파리의 저택에 발길이 닿았고, 그 이야기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실제 이야기인지 소설적 장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서 건축가로 살았던 경험이 이 책의 단단한 배경이 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야기는 파리의 한 유명 건축사무소 팀장이 부동산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수년 동안 남의 건물만 화려하게 지어줬을 뿐, 정작 자신을 위한 건축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만 제때 밥을 못 먹는 요리사나, 남의 이야기만 쓰느라 정작 제 이야기는 못 쓰는 기자처럼 말이죠.

결국 '나를 위한 건축'을 하기 위해 파리의 한 오래된 저택을 소개받았는데, 품위 있는 외관과 달리 집 구조가 어딘가 이상합니다. 비밀을 풀기 위해 저택 주인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향하지만, 그곳은 최고급 시설을 갖춘 채 '외로운 부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기묘한 곳이었습니다.

과연 이 오래된 저택과 요양병원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스포일러는 극혐하므로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는 건축 지식이 없어서 작가가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을 100%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저자의 깊은 철학만큼은 확실히 와닿더군요.

수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품과 건물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 자연이 주는 그 위대한 디자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찾아낸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늘’이다. 하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위로해 온 하늘이다.
다른 하나는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경계가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도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을 잘 정제해 실현하면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위험한 도구이기도 하다. 선악과처럼 잘 쓰면 이롭지만 잘못 쓰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파리 저택 부럽지 않던 우리들의 옛집

이 책을 읽다 보니 제 머릿속에도 오래전 살았던 시골집의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지으셨던 그 집 마당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갔을 때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그 집 마당에 햇살이 가득하던 어느 날,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에 커다란 괘종시계를 싣고 와 마루 한가운데에 걸어주셨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마당 한쪽의 축사에 돼지 몇 마리를 길렀습니다.  근처 개울가에서는 오리도 길렀지요. 나중에 누나들이 말하길, 귀한 오리알이 나오면 전부 아들인 형과 저한테만 주었다며 억울해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제 기억에는 오리를 몰고 다닌 기억만 있고 오리알을 먹은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먹은 사람은 기억 못 하고, 못 먹어서 서러웠던 사람만 기억하는 만고의 진리겠지요. 누나들, 미안해요.

여고 뒷편에 있던 그 집에는 학교에서 주워온 낡은 2인용 나무 책상도 있었습니다. 초록색 페인트가 두껍게 칠해진 상판 가운데에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칼로 깊게 파놓은 경계선이 선명했지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불편한 앉은뱅이책상도 있었는데, 그 녀석은 꽤 여러 번 이사를 갈 때까지 끈질기게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시작하시고 자식들 학비를 대느라 결국 그 집을 팔고 셋집을 전전하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괘종시계가 걸려있는 마루 기둥에는 아이들 키 높이에 맞춰 연필과 칼로 그어놓은 세로줄이 몇개 있었습니다. 날짜와 이름이 적힌 선도 있었고, 누가 언제 그어놓았는지 모를 희미한 칼금도 있었지요. 아마 부모님은 그 선 하나하나가 누구의 흔적인지 전부 기억하고 계셨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옛집도 파리의 오래된 저택 못지않은 비밀과 추억을 품고 있었던 셈입니다.

집이 사라지고 부동산만 남은 시대

요즘은 집주인이든 세 들어 사는 사람이든 기둥에 칼금을 그어서 집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습니다. 집이 '삶의 공간'이기 전에, 손해를 보면 안 되는 소중한 '재산'이자 '부동산'이 되었으니까요.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당장 내일의 주거 안정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팍팍합니다. 집 없는 세입자는 그저 서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