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이들의 '인생책'으로 꼽히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만 보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횟집 수족관에 헤엄치는 저 광어와 우럭은 다 환상이라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생물학책의 탈을 쓴 지독한 인간 다큐멘터리다. 상실로 멘털이 터진 한 인간의 처절한 정신적 구원 투쟁기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억까 앞에서 우주의 먼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고기 분류하기
한 사람이 있다.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 사람의 청년기는 그야말로 불행 종합선물세트였다. 가장 사랑하던 형이 전쟁으로 죽고, 정신적 지주였던 스승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첫 아내와 어린 딸까지 병으로 연이어 세상을 떠난다. 신이 있다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은 연속 펀치였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무너졌을 상실감 앞에서 조던은 슬퍼하는 대신 물고기 표본을 수집하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에 미친 듯이 몰두한다. 세상이 나를 흔들어도 내 유리병 속 물고기들만큼은 내가 정한 규칙대로 통제하겠다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그 광기가 정점을 찍은 것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다. 수십 년간 전 세계를 돌며 모은 수천 개의 유리병 표본이 바닥에 깨지고 섞여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된 순간, 조던은 절망하는 대신 주저앉아 물고기 목살에 바늘과 실로 직접 이름표를 꿰매기 시작한다. 회복탄력성을 넘어선 편집증적 광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장면이다.
또 한 사람. 저자인 룰루 밀러의 내면 깊은 곳에 혼돈의 씨앗을 뿌린 건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가장 사랑한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룰루가 "삶의 의미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의미는 없다. 신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어. 넌 우주의 먼지일 뿐이고,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아버지는 웅장한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사소함을 깨닫고 자유로워지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민감했던 사춘기의 룰루에게 이 말은 거대한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오랫동안 무력감에 빠뜨렸다. 설상가상으로 언니와 저자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견디다 못한 룰루 밀러는 수면제를 대량 복용했다가 이틀 만에 깨어난다.
결정적인 사건은 성인이 된 후 찾아온다. 7년 동안 깊이 사랑하며 미래를 약속한 연인과의 이별. 단순히 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삶의 규칙을 스스로 부수어버렸다는 죄책감, 자기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내면의 무질서가 그녀를 덮쳤다. 이후 새로운 사랑에 빠지면서 마주한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세상의 차가운 시선까지. 어디에도 명쾌하게 분류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혼돈처럼 느껴졌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삶이 이토록 망가졌는데, 저 지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조던은 도대체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던 걸까."
룰루 밀러는 이 질문 하나를 붙잡고 조던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인생이 어디 정답대로만 흘러가던가. 삶의 혼돈을 극복하게 해 준 조던의 강력한 자기 확신은 노년에 이르러 가장 추악한 괴물을 낳는다. 그는 인간 사회에도 물고기처럼 완벽한 계층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결국 우생학에 깊이 빠져들어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한 강제 불임 수술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다. 심지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던 대학 설립자를 독살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된다. 혼돈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지독하게 쌓아 올린 요새가 너무 완고해진 나머지, 타인의 삶을 짓밟는 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책의 제목이 등장한다.
현대 분류학의 결론:
"어류(물고기)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어는 바다에 사는 상어보다 육지에 사는 소와 진화적으로 더 가깝다. 상어와 연어는 그저 물에 살고 지느러미가 있다는 외형적 공통점만 있을 뿐, 유전적으로는 완전히 남남이다. 어류는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낸 눈속임이었다.
조던이 평생을 바친 물고기 분류가, 애초에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자연계에 물고기라는 분류가 없으니, 인간 사회의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분류도 허구다"라는 결론에는 논리적 도약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본질이 냉철한 과학 논문이 아니라 한 개인의 구원 서사라고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깨달음은 논리보다 불꽃 튀는 직관에 가까울 테니까.
아버지의 말에 실존적 허무를 느끼고, 연인과의 이별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삶의 궤도에서 이탈했던 룰루 밀러에게, 조던이 평생 바친 물고기 분류가 가짜였다는 사실은 거대한 해방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2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조던을 위한 변명
다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책의 결말부에서 저자는 조던의 평생 업적을 다소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의 우생학을 단죄하려다 과학적 노고까지 통째로 부정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조던의 집착이 편집증이었을지언정, 그 노력이 완전히 무의미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물고기는 없다"는 현대의 결론 역시, 조던처럼 평생 에탄올 냄새를 맡으며 표본을 모았던 이들이 축적한 데이터의 거대한 탑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말했듯, 새로운 패러다임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기존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자들이 연구를 밀어붙이다가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변칙 사례들이 쌓일 때 비로소 전환이 일어난다.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나 에테르설을 주장했던 19세기의 과학자들을 우리가 비웃지 않는 이유도 같다. 뉴턴이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때, 그 거인들의 어깨에는 치열하게 연구했으나 결국 틀린 것으로 밝혀진 과학자들의 유골도 포함되어 있다. 조던 역시 그 거인의 뼈대 중 하나다. 심지어 뉴턴의 만유인력도 오늘날의 이해와는 다르다. 어느 과학자가 후대에 자신의 연구가 틀렸다고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우생학에 대해서는 도저히 변명할 수 없고, 독살혐의에 대해서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하다고 해두자.
삶의 혼돈에 대처하는 자세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 감당할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조던처럼 바늘을 들고 억지 질서를 꿰맬 것인가, 아니면 룰루 밀러처럼 무질서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을 것인가.
조던의 비틀린 집착마저도 혼돈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했던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바라보게 될 때, 이 씁쓸하고도 아름다운 에세이가 주는 위로가 비로소 완성된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들과 회에 소주 한잔 해야겠다. 이것도 세상의 혼돈에 우주의 먼지가 살아가는 한 방법이 아닐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아도 생선회는 존재할 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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