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국경 장벽은 2016년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은 멕시코가 낸다"는 구호에서 시작했다. 실제로는 멕시코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예산을 둘러싼 의회와의 대치는 2018년 말 35일간의 역사상 최장 셧다운으로 이어졌다. 1기 임기 동안 지어진 458마일 중 순수 신규 구간은 50마일 남짓, 나머지는 낡은 철조망을 교체한 것에 가까웠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단시켰다가 이주민이 급증하자 슬그머니 재개했다.

2025년 재집권한 트럼프는 태평양에서 멕시코만까지 2천 킬로미터 규모의 '스마트 장벽'을 470억 달러 예산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열감지 센서와 이중 장벽을 갖춰도 사람들은 사다리를 놓고 터널을 판다. 야생동물 이동로가 끊기고, 사유지 소송이 이어지고, 인권단체는 망명 신청자의 권리 침해를 지적한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
살 길을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노래가 있다.
https://youtu.be/A14Qg8gu_HA?si=Y6bQLWiYyoeKQV-8
Donde Voy. 그대로 옮기면 "나는 어디로 가나요"다. 1989년,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의 데뷔 앨범 《Homeland》에 실렸다. 그녀는 텍사스 산안토니오, 멕시코계 이민자 부모 밑에서 열세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국경 마을에서 자란다는 건 국경 수비대의 단속 장면을 일상처럼 보고 자란다는 뜻이다. 밤에 산을 넘는 사람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뉴스에서만 잠깐 언급되는 사람들. 그 풍경이 곡의 재료가 됐다. "나는 어디로 가나요"라는 질문은, 국경순찰대 예산이 아무리 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가사 속 화자는 도망친다. 산을 넘어, 홀로.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희망이 나의 목적지"라고 노래한다. 이게 참 얄궂은 게, 희망을 목적지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지도상의 어떤 좌표에도 도착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목적지가 희망이라는 건,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Adónde voy, adónde voy?
(어디로 가나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La esperanza es mi destinación.
(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
Solo estoy, solo estoy,
(나는 혼자예요, 홀로 남겨졌어요,)
por el monte prófugo voy.
(산을 넘어 도망쳐 가고 있어요.)
티시 이노호사라는 이름은 몰라도, "아돈데 보이, 아돈데 보이" 하는 그 멜로디는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스페인어 가사인데도 한국에서 그렇게 사랑받았다는 게 신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신기할 것도 없다. 멜로디에 한(恨)이 있으면 언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이 노래가 그리는 국경 넘기는 낭만이 아니다. 역사와 통계로 바꾸면 더 삭막해진다.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밀어내는 힘이고 하나는 끌어당기는 힘이다.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이 이름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람을 밀어낸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카르텔과 마라 살바트루차 같은 갱단이 강요하는 갈취와 강제 입단. 독재 정권의 탄압. 그리고 요즘 부쩍 자주 언급되는 가뭄과 허리케인, 그러니까 기후 이민자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람들.
당기는 힘은 단순하다. 미국과 출신국 사이의 단순노동 임금 격차는 보통 대여섯 배, 많게는 열 배 가까이 벌어진다. 먼저 건너간 가족과 이웃이 만들어놓은 네트워크가 있다. 망명 신청을 하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몇 년간 체류가 가능하다는 제도의 틈새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틈새를 상품화한 브로커, '코요테'라는 이름의 밀수업자들이 있다. "지금 가면 받아준다"는 말로 사람들을 산으로 밀어 넣는.
노래 속 화자가 넘던 그 산에는, 지금은 벽이 서 있다.
미국과는 너무 가까운 나라들
여기서 조금 뒤로 물러나야 한다. 국경 문제만 들여다보면 마치 21세기에 갑자기 생긴 일처럼 보이지만,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향한 미국의 시선은 훨씬 오래된 역사다. 지금은 미국이 무고한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만들어온 상황에 가깝다. 앞마당의 패권을, 자원과 농장을, 때로는 반공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 미국은 줄곧 이 지역의 정상적인 발전과 개혁을 방해해 왔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멕시코는 국토의 55퍼센트를 잃었다. 1823년 먼로주의 선언 이후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앞마당처럼 여겼고, 온두라스·니카라과·도미니카공화국에 해병대를 보내 친미 정권을 세우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파나마의 분리 독립도 운하 하나를 얻기 위해 배후에서 만든 결과였다.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말도 이 시기에 나왔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철도와 항만까지 직접 깔며 국가 위의 국가처럼 군림하던 시절이다. 1928년 콜롬비아에서는 이 회사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가 정부군의 사격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 가브리엘 G. 마르께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954년 과테말라에서는 토지 개혁을 밀어붙이던 민선 대통령이 "공산화 우려"라는 명분 아래 CIA가 기획한 쿠데타로 쫓겨났다. 실제 화근은 유나이티드 프루트가 놀리던 땅이었다.
이런 개입은 쿠바 혁명 이후 더 노골적으로 이념화됐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CIA가 훈련시킨 부대에 붙잡혀 1967년 처형됐다. 죽은 게바라는 오히려 혁명의 아이콘이 됐으니, 이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멕시코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불쌍한 멕시코, 하느님과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구나." 지리는 운명이 될 때가 있다.
다시 노래로 돌아온다. 이 모든 역사와 통계와 정책 논쟁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산을 넘는 한 사람이다. 밀어내는 고향과 끌어당기는 국경 저편 사이에서, 목적지를 "희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
트럼프는 벽을 더 높이 쌓을 것이다. 다음 정권은 또 무언가를 허물거나 다시 세울 것이다. 카르텔과 코요테는 어떻게든 새 길을 찾을 것이고, 통계는 계속 갱신될 것이다. 그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여전히 밤에, 산을 넘어, 홀로. 벽은 물리적으로는 사람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노래는 막지 못한다.
드라마 《배반의 장미》를 본 적은 없다. 이 노래가 왜 서른몇 해 전 한국 드라마의 주제곡이 됐을까. 왜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이 멜로디에 눈물을 흘렸을까. 어쩌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마음은 국경도 언어도 가리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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