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계시는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앞에 앉았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 지워질까 봐 아예 돌에 새겨놓은 감사와 사랑, 절절한 그리움.
형제도 친척도 없이 자라 자손 번창이 소원이셨던 두 분 묘석에는, 바람대로 '손을 불린' — 이건 우리 어머니 말씀인데, 삼대독자 집안에 시집와 아들딸 여섯을 낳고 손자 증손자까지 봤다고 늘 위세가 등등하셨다 — 증거로 증손자 이름까지 한 면 가득 적어놓았다.
막걸리 한잔.
어릴 적 고향에서는 가끔 아버지 술 심부름을 갔다.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왔다. 어두운 밤길, 누나들과 함께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모금씩 맛을 보곤 했다. 아버지에게는 오다가 쏟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별말씀 없으셨던 걸 보면,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술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둘 다 끊으셨다. 몸이 안 좋아지셨기 때문이다. 그 어렵다는 금주금연을 해내신 건, 어린 자식들을 두고 잘못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장성해 하나둘 곁을 떠나자, 그제야 짐을 내려놓으셨는지 소파에 앉아 소주를 한두 잔 하시곤 했다.
작은아들 — 접니다 — 결혼할 때는 유난히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놀리느라 '쫀생이'라 흉을 봤다. 경상도 사투리로, 난쟁이 비슷한 어감이다. 열 살도 안 돼 부모를 잃고 남의집살이로 못 먹고 고생한 아버지와, 몸종을 두고 소고기 아니면 안 먹었다는 어머니. 체구부터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원래도 작은 체구에 '늙어서 오그라든' — 이것도 어머니 표현이다 — 할아버지가 손자 유치원 등하원을 도맡으셨는데, 아이가 떼를 쓰면 결국 업고 다니셨다.
막걸리 한잔, 그 노래 가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남이 지은 노래가 우리 아버지와 이렇게 겹치는 걸 보면, 그 시절 아버지들은 다 비슷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우아한 유령
윌리엄 볼콤이 1970년에 쓴 래그타임 피아노곡, 《세 개의 유령 래그》 중 첫 곡이다. 일찍 여읜 아버지, 신사적이고 우아했던 그 사람을 그리며 썼다. 경쾌한 래그타임 리듬 위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얹었으니, 슬픔과 흥이 한 곡 안에서 사이좋게 지낸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리사이틀 앙코르로 즐겨 연주하는데, 피아노 원곡보다 오히려 이 버전이 더 사랑받는다. 그 걸음걸이가, 아버지를 웃으며 추억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디오스 노니노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1959년에 쓴 곡이다. '아디오스'는 안녕, '노니노'는 아버지 비센테 피아졸라를 부르던 애칭이다. 해외 순회공연 중이던 피아졸라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사 소식을 듣고 뉴욕으로 돌아와, 방에 홀로 들어가 반도네온을 붙잡고 단 삼십 분 만에 이 곡을 써냈다.
격정적인 탱고 리듬 뒤로 애절한 선율. 사랑과 이별의 황망함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김연아 선수가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쓰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졌다.
우아함과 격정, 웃음과 통곡. 문화도 다르고 장르도 다른 곡들이지만, 아버지를 향한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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