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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다

해파랑길로 걷다 28코스 부구삼거리 ~ 호산버스터미널

by 낙타 2021. 11. 18.

2021. 10. 2
해파랑길 28코스
경북 울진읍 북면 부구 삼거리에서 강원도 태백시 원덕읍 호산 버스터미널까지
구간거리 10.7KM
소요시간 3시간 30분 정도

부구교를 건너서 해파랑길 27코스 28코스의 기점 인증대가 있다. 코스 인증 후 오른쪽으로 하천 옆으로 걷기 시작한다. 하천을 잠시 따라가면 곧 바다가 나타난다. 석호항, 석호 방파제까지는 계속 바닷가로 걷는다. 펜션이나 식당이 제법 있고 바닷가에는 텐트를 치고 캠핑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가로워 보인다. 길가에 대게 모양의 장식물이 눈에 띈다.


동해 바다의 재미가 가득한 작은 해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석호항을 지나면 더 이상 바다가 아니라 도로나 마을을 계속 지나게 된다. 도로를 지나게 되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동해안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겹쳐서 그렇다. 오르막길을 용을 쓰며 오르는 사람들이 있고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가며 나에게 힘내세요 인사를 하고 간다. 나도 즐거운 라이딩 하세요 하고 인사를 외친다. 이렇게 인사하는 것 맞겠지?

도로를 걷는 것에 지루해질 쯤에 왼쪽에 멋진 공원과 정자가 나타난다. 도화동산, 도화공원이다. 경북의 도화인 배롱나무가 가득하다. 이곳은 2000년 4월에 동해안 최대의 산불 피해지역인데 시민들과 군인들이 힘을 모아 진화한 기념이라고 한다. 배롱나무 꽃이 필 때 이곳 정자에 오르면 장관이겠다.


도화공원을 지나서 조금 가면 '강원도 한국관광의 1번지'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길 이름도 삼척로다. 이제 경북을 벗어나서 강원도에 접어든 것이다. 곧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사뭇 다르다. 레미콘이나 시멘트 회사로 보이는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다. 고작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삼척 수로부인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에서 도로를 벗어나서 산길로 간다.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수로부인이 걸었음직한 산길이 나온다. 수로부인 같은 절세미인과 함께 걸으면 멋지지 않은 길이 있을까마는.

관동대로 수로부인길은 총 24km인데 삼척의 문화생태탐방로이며 바다와 산이 함께하는 옛길로 설명한다.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바다를 안고 걷다' 7.5km로 고포해변 - 옛 동해휴게소 - 갈령재 - 월천리 - 월천교 - 호산뚝방길 - 옥원2리로 간다. 갈맷길 28코스와 비슷하게 가는가 싶다. '황희정승을 만나러 가는 길'은 8.8km로 옥원2리에서 상수도정수장 - 성황당 - 옛7번국도 - 소공대 - 소공령 - 성황목이다.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가 이 지역에 흉년이 들자 관찰사로 와서 이곳 주민들을 정성껏 돌보아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황희 정승이 한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쉬던 곳에 돌을 쌓고 소공대를 만들었다. 소공대비는 황희의 4 세손이 관찰사로 와서 무너진 소공대를 다시 쌓고 비를 세웠는데 지금 있는 비석은 황희의 6 세손이 강풍에 부러진 비석을 다시 세웠다. 근래에 이 비석이 태풍에 부러졌는데 접착해서 복구했다.

시골 지역에 가면 흔히 ' 저 다리가 언제 놓인 다리인데 태풍 매미에 떠 내려갔다가 다시 세웠다.'거나 '저 나무가 몇 백년 됐는데 태풍 사라에 부러졌다'는 사연이 많다. 이런 것도 역사가 아닐까?

'옛이야기 속으로' 구간은 8km인데 성황목에서 사기촌 - 자랑밭골 - 이칠목재 -장호초교로 이어진다. '황희정승을 만나러 가는 길'과 '옛이야기 속으로'길은 가보지 못해 아쉽다.

삼척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곳에는 '수로부인길'이라는 도로가 따로 있어서 혼동하기 쉽겠다.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상한 돌무더기가 쌓여있고 명판이 붙어 있다. '국시댕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국시댕이는 길에 있는 돌무더기탑인데 '쿠시'라고도 부르기도 했단다. '국시댕이'는 고갯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돌탑이 모여 만들어진 커다란 돌무더기로 서낭당처럼 신령한 장소다. 돌을 쌓거나 침을 뱉기도 했다. 경기도 지역의 옛길에도 국시뎅이가 있다.

부산의 송정 바닷가에도 돌을 쌓아놓고 산에도 군데군데 돌을 쌓아놓은 것이 생각난다. 티베트이나 히말라야의 다큐멘타리에서도 돌을 쌓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이거야 말로 인류 공통의 '밈'이 아닐까 싶다. 돌탑을 좀 크게 쌓으면 피라미드나 부르즈할리파 등의 이름이 따로 붙는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함께 걷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산길이 이어진다. 경치도 훌륭해서 걷는 맛이 있다. 그런데 해파랑길 코스 때문에 애를 먹었다. 안내 표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자꾸 길을 지나쳤다가 돌아갔다. 지도나 앱을 잘 확인하며 걸어야 한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이런 고생을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가파른 구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멀리 삼척이 보인다.


산을 내려오면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 동네를 지나면 가곡천을 만나게 된다.


가곡천의 맑고 찬 물속에는 은어가 서식한다. 은어는 강에서 깨어난 치어가 바다로 내려갔다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다시 강으로 올라와서 살다가 알을 낳고 죽는다. 보통 8월 전후로 알을 낳는다고 한다. 일생을 바다에서 살다가 알을 낳기 위해서 강으로 올라오는 연어와는 다른 생태이다. 몇 종류의 장어는 반대로 일생을 강에서 살다가 알을 낳기 위해서 바다로 간다고 한다. 재미있는 생태계다. 은어가 맑고 찬 물에 알을 낳는 습성 때문에 환경오염에 민감하다. 다행히 강원도 지역의 하천에는 아직 은어가 있다. 은어의 이동을 위해서 보에 어도를 설치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는 모양이다.

은어는 맛있는 물고기로 알려졌는데 난 먹어보지 못했다. 내가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민물고기를 잘 못 먹는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가 나기도 하고 기생충 때문에 꺼림칙하다.


월천교를 건너면 삼척과 울진을 잇는 7번 국도와 태백으로 향하는 416번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기사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쟁반에 받쳐서 나온 밥은 의외로 괜찮았다.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내가 먹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트래킹을 가도 유명한 맛집을 찾는 경우가 없다. 오히려 시장이나 이런 식당을 지나가다가 끌리면 들어가서 먹는 편이다.


호산 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하면 해파랑길 28코스 29코스 기점 인증대가 있고 오늘의 여정은 끝이다.

울진 구간이 원자력발전소를 피하느라고 내륙으로 도로로 한참을 걸었는데 삼척 구간도 비슷하다. 화력 발전소나 산업시설 때문에 바닷가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 경우가 제법 있다. 대신에 시골 마을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고 도로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니 그것도 괜찮다.

이 코스는 '(주)부산의 아름다운 길'에서 운영하는 해파랑길 하루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