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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만나다

부산진구 우리동네 동민의 시비 時碑

by 낙타 2021. 11. 11.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일하는 곳이 서면 교차로 인근이라서 자주 지나다닌다. 어느 날 평소처럼 무심코 지나가는데 문득 돌 떵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정호승의 '봄길'이라는 시를 새겼다. 왜 여기에 저런 시비가 서 있지 싶었다. 

부산진구에서 2007년부터 '우리 동네 시 갖기 운동'을 했다. 주민들의 문화의식을 고취하자는 의도였다. 주민들의 설문조사로 '우리 동네 시'를 선정하고 시비를 세웠다. 2007년 2월에 범천1동의 '우리 동네 시'가 선정되어 범냇골 교차로 부산은행 앞에 시비를 세웠다. 범천1동의 '우리 동네 시'는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개막 행사에 도종환 시인이 참석했다.

이후로 2012년까지 부산진구의 각 동네마다 '우리 동네 시'를 정하고 시비를 세웠다. 정호승의 '봄길'은 '부전1동 동민의 시'다. 서면 지하철역 13번 출구 뒤쪽에 있다. 

 

'부전2동 동민의 시'는 권환의 '윤리'라는 시다. 생소하다. 서면 롯데백화점 주차장 쪽 모퉁이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안에 시비가 있다. 박꽃같이 아름답게 살련다.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이 온통 술집에 담배꽁초가 가득해서 근처에 가기 싫은 장소다. 사진에도 길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가 보인다.  

양정1동 우리동네 동민의 시는 윤동주의 '서시'다. 양정역 2번 출구에 있다.

양정2동 우리동네 시는 김석규의 '사랑에게'. 양정역에서 연제구청 삼거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119치안센터가 있다.  뒤 편의 '꿈동산 어린이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에 시비가 있다.

전포1동민의 시는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이라는 시다. 누가 선정했을까 궁금하다. 서면 NC백화점 앞에 있다. 

전포2동민의 시는 박목월의 '청노루'. 부전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있다.

 

 개금1동은 개금 삼거리에 있다. 이시영 시인의 '서시'를 선정했다. 개금1동도 주변이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어지럽혀졌는데 최근에 화단으로 새 단장했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다른 동네와는 달리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서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당감2동은 새마을금고 앞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비가 있다. 또 백양산 등산로변 오행약수터 입구에 이호우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음' 시비가 있다고 검색된다. 둘 다 사진을 찾을 수 있는 걸로 봐서는 잘못된 기사는 아닌 듯한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등산로 입구는 당감2동이 아니라 당감1동이나 4동인데 기사에 착오가 있는 듯하다. 직접 확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검색을 통해 찾아낸 곳은 이게 전부다. 혹시 부산진구 주민이 이 글을 보시면 자기 동네의 시가 새겨진 시비를 제보해 주세요. 

 

동네마다 시를 정하는 것은 쓸데없이 꽃이나 새를 상징으로 정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고 좋은 일이다. 지나가다 한 번씩이라도 시를 읽어보면 그 아니 좋을까. 다만 지금은 잊혔는지 관리가 소홀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