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로 걷다 39코스 솔바람다리 ~ 사천진해변

낙타 2022. 2. 9. 23:38

해파랑길 39코스
강릉시 솔바람다리 ~ 사천진해변
2022.1.22
거리 16.1km
소요 시간 : 6:10

새벽 6:41분에 강릉시 남항진동 남항진해변에 도착했다. 솔바람다리 입구에 해파랑길 38, 39 인증대가 있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지그재그 구조물이 솔바람다리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솔바람다리는 강릉 남대천의 최하류에서 남항진해변과 안목해변을 이어준다.

솔바람다리를 건너면 곧 강릉항이고 안목해변이 나온다. 안목해변은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이른 새벽인데도 카페는 문을 열었다. 사람들도 조금씩 보인다. 해변의 보도와 모래사장은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어 있고 여기저기에 아기자기한 예쁜 설치물도 보인다.

카페거리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규모는 작다. 카페도 모두 고만고만한 크기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 한잔은 해야 하지 않겠나. 동해 바다에서 해 뜨는 것을 보면서 커피를 마셔야지. 커피를 주문하니 삶은 계란을 준다. 배고플까 봐 주는 건가 보다. 커피를 마시며 계란과 가져온 과일 과자 등도 슬쩍 꺼내 아침 삼아 먹는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출을 보리라는 계획은 오산이었다. 각도가 맞지 않다. 해는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강릉항여객터미널 방파제 위로 떠오른다. 먹던 것을 얼른 정리하고 해변으로 나왔다.

해가 불쑥 솟아올랐다. 몇 분 전까지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출 인증샷을 남기고.

이 코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풍경이다. 아직 아침놀이 남아있는 하늘, 푸른 바다, 모래사장, 그 앞에 눈 덮인 땅과 송림. 정말 좋다.

바닷가에 조형물이나 조각이 있어서 사진 찍기에도 좋다.

경포천을 건너는 강문솟대다리다. 경포호에 거의 이르렀다.

솟대다리에서 경포천을 바라본 풍경

 

경포호다. 경포호는 수면이 거울같이 청정하다는 뜻이다.

정철은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경포호에 뜨는 달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고 했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월파정과 새 바위에는 송시열의 글씨가 있다. 바다와 이어지는 석호로 민물이었지만 수질 때문에 보를 개방하면서 최근에는 사실상 바다로 변했다.

경포호를 걷고 있는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자식들 키우느라 남의 집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어느 해인가 갑장계에서 관광을 가기로 했다. 버스를 대절하고 음식을 준비해서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아침에 일을 해놓고 가느라고 그만 못 가셨다. 바쁘게 일을 해놓고 급히 씻고 나가셨지만 매정하게도 버스는 출발한 뒤였다. 두 분이 집에 돌아와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일하러 나가시는 것을 어린 나는 이불속에서 듣고 있었나 보다. 한참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 투병 중이실 때였다. 내가 그때 일을 이야기하니 어머니께서는 '니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나'하셨다. 왜 경포호에 와서 그 일이 기억날까? 혹시 그때 두 분이 가기로 하셨던 곳이 강릉 경포대 쪽이었을까? 모르겠다. 나중에 내가 차로 두 분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나마 그렇게 해드린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경포호 옆에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다. 경포호에는 산책로를 따라 허균의 홍길동전의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허균 허난설헌 공원이 있고 고택이 보존되어 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초상이 있고 마루 앞에는 허난설헌의 시가 전시되어 있다.

연꽃 따는 노래
난설헌 허초희

가을이라 맑은 호숫물 옥돌처럼 흐르는데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난초 배를 매어 두고
물 건너 임을 만나 연밥을 던지다가
저 멀리 남이 봤을까 봐 반나절이나 부끄럽네

또 다른 시는 '아들딸 여의고서'라는 제목인데 아들과 딸을 연이어 잃고 그 애달픈 마음을 적었다. 엄격한 신분 사회인 조선에서 서자인 홍길동을 창조하고 율도국을 꿈꿨던 허균. 조선시대 여인으로서의 감성과 삶을 시로 남긴 난설헌 허초희. 눈 덮인 그들의 옛 집터가 쓸쓸하다.

경포대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저
마셨다. 밤을 새운 바쁘고 피곤한 길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경포호를 지나서 다시 바다를 만난다. 빨간 우체통이 길가에 서 있다. 낡은 우체통은 페인트를 덧칠해서 울퉁불퉁하다. 그 사이 누가 열심히 편지를 부치면서 만졌는지 한쪽 귀퉁이는 닳았다. 뒤쪽에 있는 전화박스는 혹시나 해서 들여다보니 빈 통이다. 멀리 보이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시원하다.

사천진해변에 거의 다 왔다. 하천이 얼어있고 눈이 덮여 있다. 강원도가 확실히 춥긴 춥나 보다. 그런데 이 추위에 바다에서 스쿠버 장비를 메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보기만 해도 추운 바다에 들어가다니. 대단하다.

목적지인 사천진해변에 도착했다. 입구에 해파랑길 인증대가 있다. 그 앞에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먹고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두 병 샀다. 강릉이나 강원도 막걸리인 줄 알았는데 상표가 서울막걸리다.

강릉 커피콩 빵의 원조집이래서 커피콩 빵도 한팩 샀다. 가게 앞에 고양이 두 마리가 햇볕을 쬐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