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0코스
사천진해변 ~ 주문진해변
2022.2.12
거리 12.5km
소요시간 3:56
새벽 다섯 시 무렵 사천진해변에 도착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해변에 약간의 눈과 얼음이 있지만 도로는 상태가 좋아서 다행이다.
사천진해변에 교문암은 허균과 관련된 유적지다. 허균은 17세기 강릉의 교산에서 태어났다. 옛날 교산의 바닷가 백사장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늙은 교룡이 그 밑에 엎드려 있었다. 그 교룡이 연산군 7년 가을에 그 바위를 깨뜨리고 떠나면서 두 동강이 나서 구멍이 뚫려 문과 같이 되었으므로 교문암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 뛰놀았던 교문암의 유래를 따서 허균은 교산이란 호를 썼다. 사천진해변 인근에는 허균이 태어나 태를 묻은 애일당 집터가 있다. 초당의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에 있는 고택은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이다. 근래에 세워진 교산시비도 있다.
앞에 있는 붉은 조각품은 한글로 '사랑'이다. 2017년 해변페스티발 설치미술 공모전 당선작품이다. 사진이 흐려서 유감이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는 불빛에 의지해 한참을 걸었다. 가끔 길에 얼음이 남아 있어 조심하며 걸었다.
밤에 조명 때문인지 바다 물빛이 예쁘다. '너무' 예쁘다. 멀리 보이는 배에서 밝히는 조업등이 이 새벽에 추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려준다. 길을 걷는데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 방향이 바다 쪽이었다. 내가 잘 못 들었을까? 설마 배에서 닭을 키우지는 않을 텐데.
이곳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란다. 앞에 보이는 짧은 방파제의 끝에서 남녀 주인공이 마주 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보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은 외계인이고 '도깨비'의 남자는 도깨비다. 둘 다 이 세상에 없는 종류다. 그렇게 멋있고 완벽한 남자는 인간 종족 중에는 없으니 꿈 깨라는 뜻일까? 이 새벽에 여자 관광객이 혼자서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다.
주문진항에 다다르면 유람선 선착장이 있고 건어물과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몇몇 식당은 벌써 불을 밝히고 생선구이로 아침을 먹고 가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관광유람선 선착장으로 해파랑길 코스가 꺾어진다. 주문진수산시장, 좌판풍물시장, 주문진건어물시장이 연이어 있어서 규모가 꽤 크다. 해파랑길로 오면서 보았던 시장 중에서는 가장 큰 시장거리인 듯싶다.
부둣가에 경매가 한창이다.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경매 중개사의 목소리가 바쁘다. 구경하러 들어갔더니 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하니 외부인은 나가 달란다. 바쁘게 일하는데 구경하기도 미안해서 걸음을 돌렸다.
그 사이에 해가 많이 떴다.
홍게오뎅이다. 홍게로 육수를 끓이고 어묵을 익혔다. 이런 건 또 먹어보고 가야 한다. 홍게 향이 밴 어묵 두 개를 먹고 국물을 한 컵 마시니 추운 겨울 아침에 속이 뜨끈해졌다. 소주 한잔 하면 딱 어울리겠다.
주문진항을 지나서 마을 뒤쪽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주문진 등대로 가는 길이다.
주문진 등대는 1918년에 세워져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대하며 찾아갈 만큼 멋진 모습은 아니다. 정작 등대의 의의는 다른데 있다. 군의 초소도 그렇지만 등대도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곳에 세워지는 시설물이다. 조망이 좋고 탁 트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주문진등대에서 동해.
주문진등대에서 주문진항과 마을을 바라본 모습.
주문진 등대에서 내려오면 소돌해변 아들바위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해변에 신기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가 많다. 소돌해안일주산책로를 따라 볼거리가 많다. 소돌이라는 지명은 마을 전체가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고 또 앞바다에 소를 닮은 바위에서 유래했다. 가수 배호의 '파도' 노래비가 서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곳과 연관 있는 노래는 아니고 제목과 가사 때문에 이곳에 새긴 모양이다. 저작권을 해결하고 노래비를 세웠노라고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아들바위는 소원바위, 죽도바위라고도 부르고 코끼리처럼 생겨서 코끼리바위라고도 부른다. 아들이 천덕꾸러기가 된 요즘에는 아들바위가 무슨 소용이랴. 사진의 왼쪽 상단에 있는 바위가 아들바위다. 앞에 있는 바위는 황소바위라는데 나에게는 생선 머리처럼 보였다. 다른 이는 사자나 호랑이 머리라고 했다.
아들바위 공원에 있는 전망대. 바위가 역시 범상치 않다.
아들바위공원에서 본 가장 신기한 풍경은 바위가 아니라 해녀였다. 부산의 영도나 기장 일대의 바닷가에서는 해녀를 간혹 보았다. 그런데 강원도의 추운 바다에서도 해녀를 볼 줄이야. 알고 보니 주문진 일대에는 해녀로 조업하는 분들이 있고 그렇게 수산물이나 횟집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동해는 파도가 거친 날이 많다는데 어떻게 해녀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주문진에 '제주해녀' 간판을 달고 있으니 제주도 해녀가 고향을 떠나 강원도 찬 바다까지 왔던가 보다.
아들바위공원의 방파제 안쪽의 물결이 잔잔한 곳에는 오리 떼가 모여 있었다.
주문진해변에 도착. 방탄소년단 앨범 재킷 촬영 장소는 조금 더 가야 있다. 해파랑길 표지판은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에 스탬프 인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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