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세이노는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자신이 서문에서 말하듯이 부자인척 블러핑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기요사키의 저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1997년 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는 '가난한 아빠'라고 표현하는 진짜 아버지와 '부자 아빠'로 표현되는 친구 아버지, 이렇게 두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부자 아빠'를 통해 '부자가 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부자가 된 방법과 투자법을 설명한다.
세이노는 기요사키의 투자방법이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정말로 자신이 사업적으로 성공해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책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과장하거나 꾸몄다고 주장했다. 재테크나 성공담의 주인공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있으니 사실을 알 수는 없다.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기요사키의 친아버지는 교육에 종사했다. 기요사키가 보기에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하여 부자가 되지 못했으니 가난하고 실패한 인생이다.
과연 그런가? 부자 아빠야 말로 아무런 사회적 기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가 가진 부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모았을 뿐, 자신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사회는 돌아가고 부동산 거래는 이루어졌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낸 아빠가 그저 가난한 아빠로 불려야 하는가? 교육이 없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부자아빠보다는 가난한 아빠가 사회에서는 훨씬 훌륭하고 가치 있는 일을 했다.
부자 되세요
부자란 무엇일까? 부는 무엇일까? 사회에서 부자, 부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생각에 부는 사회 자산의 불균형한 집중이다. 남보다 많이 가져야 부자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강남아파트와 현금 100억을 가졌다면 아무도 부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자산은 유한하기 때문에 부자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다. 부자가 자산을 불균형하게 독점하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그만큼 자신의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자는 부를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있던 자산을 집중시켰을 뿐이다. 즉 부자아빠는 사회에서 볼 때 필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이것은 공산주의 이론이 아니라 사회 내의 자원은 유한하다는 경제학의 원칙이다.
세이노는 기요사키를 비판했다. 정확히는 투자 방법 면에서. 그는 자신의 실전 투자 기법을 배우면 실제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둘은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세이노와 기요사키는 같은 유형이다. 부자가 되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특히 어릴 때 고생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에 많은 것 같다. 내 주위에도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깡패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세이노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말은 모두 옳다. 우리가 꼰대라고 할 때 그의 말이 틀려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라떼도 들어보면 틀린 말은 없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말씀이 틀릴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너무 뻔하고 옳은 말이라서 듣기 지겨우니까 꼰대라고, 라떼라고 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한잔 사주면서 라떼를 늘어놓아도 힘들텐데 맨 정신에 두꺼운 책을 읽느라고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세이노의 가르침 :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라. 건강 걱정 따위는 하지 말고 잠도 줄이고 먹는 시간도 아끼면서 공부하고 노력하고 일해서 돈을 모아라.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고? 정말 그렇다면 건강 걱정하면서 계속 그렇게 튼튼하게 살아라. 노숙자로. 그 튼튼한 몸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그 육신의 존재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지? 그저 오래 살기 위해서?
세이노는 자신의 몸이 건강한 체질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분의 가장 큰 복은 건강한 몸을 타고난 것이다. 정말로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나 보다. 세이노가 볼 때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모두 게으름뱅이인가?
건강이 안 좋아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어도 돈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은 많다면서 건강보다 돈이라고 하는데. 2,30대에 건강문제로 자살할 정도면 중환자 아닌가? 병원에서 죽는 젊은 중환자들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력에 건강이 안 좋아서 사업을 포기한 경력이 있다. 건강이 안 좋으면 사업이고 공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도 겪었다. 이쯤 되니 라떼가 너무 찐해서 한약처럼 느껴질 정도다. 역시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인가
세이노의 가르침 중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은 건강마저 돌보지 않으며 돈을 모은 다음의 일이다. 세이노는 자신의 실전 투자 기법에 대해서 말하는데. 정작 그 내용은 알려주지 않는다. 세이노가 기요사키의 투자방법을 비판한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기요사키는 엉터리라고 비판받을 망정 자신의 사업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밝혔는데 세이노는 약력과 글 내용에서 대충 어떤 종류의 사업을 했고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를 맡아서 했다는 할 뿐. 어떻게 1000억의 재산을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왜 재산 형성 과정을 말하지 않을까? 정작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다. 종잣돈을 모으는 부분은 열변을 토하다가 어떻게 해서 1000억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입을 다물다니. 시드머니 1억은 죽을 정도로 노력하고 아껴서 만들 수 있다. 과외를 해도 되고 노가다를 해도 된다. 그러나 노력해서 1억 모으기와 1억을 1000억으로 불리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이노가 이후에 내리는 가르침은 변호사를 대하는 법, 공무원을 대하는 법, 항공기 1등석의 서비스에 대한 내용들이다. 라떼 특유의 확신에 찬 어조로 내리는 가르침은 재미있으나 우리가 알고 싶은 내용은 그게 아니다. 어떻게 1000억을 만들었는지 실전투자방법을 알려 달라. 혹시 세이노는 설명할 수 없는가? 설명해도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이노는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서 말하면서 항공기 일등석의 서비스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다.
세이노의 가르침 : 일등석 손님이 타게 되면 승무원은 손님의 겉옷을 받아 걸어 놓은 뒤 신문을 제공하며 물수건도 주고 음료 서비스를 하게 되는데 주스나 샴페인을 가져오면서 일등석에는 주로 마카다미아를 준다. 주스나 샴페인은 유리잔에 담겨 서비스되고 마카다미아는 작은 도자기 종지에 담겨 나오면서 종이 냅킨도 같이 제공된다. … 종이컵이나 일회용 식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 스틸로 된 제품들이 사용된다. 어느 외국 항공사에서는 오렌지 주스도 신선 오렌지를 압축하여 가져오고 커피도 원두를 선별하여 제공한다.
세이노의 말을 요약하자면 비싼 돈을 내고 타는 일등석 승객은 당연히 최고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땅콩을 봉지째로 내왔다고 화를 내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스타벅스에서 직접 커피잔을 받아먹어서 그렇다. 고급 호텔이나 항공기 일등석에서 커피를 서비스할 때 1초간 손을 대고 있다가 떼는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가난뱅이들아.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이상하게 걸렸다. 비싼 돈 내고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공감능력이 없구나.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서 대다수 사람들이 분노했던 이유에 대해서, 갑질이란 것에 대해서 공감을 전혀 못하는구나. 다른 사람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구나.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이 쓴 책 ‘12가지 삶의 법칙: 혼란스러운 세상의 해독제 (12 Rules for Life: An Antidote to Chaos)’의 첫 번째 장에는 바다의 밑바닥에서 바닷가재들의 영역 다툼에 대해 설명한다. 흥미로운 건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다. 패자는 잔뜩 수그린 자세로 바닥을 기어 다닌다. 하지만 승자는 몸을 쭉 펴고 집게발을 들고 뽐내며 다닌다. 크고 더 위험해 보이기 위해서다. 이때 승자 바닷가재의 뇌를 살펴보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비율이 높다. 반면 패자는 세로토닌의 비율이 낮다. 싸움에서 많이 진 바닷가재일수록 비율은 더 낮아진다. 즉 바닷가재의 사회적 서열에 따라 바닷가재의 행동과 심지어 호르몬 분비가 달라진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들도 자신의 부와 권력 여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고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자들은 공감능력이 없다고 한다.
1000억이나 있으니 충분히 공감능력이 없을 만하다.
세이노는 한국의 한 세대를 잘 보여준다.
주체성이 강한 한국의 산업화 시기의 세대.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기기를 100퍼센트를 넘어 150퍼센트 사용하는 한국인들. 심지어 자신의 몸과 마음도 150퍼센트 사용하면서 살아온 세대. 세이노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그 세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고군분투에 경의와 위로를.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크로이소스와 솔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좀 길지만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서 대부분 그대로 옮겼다.
성공해야하는 이유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이 글을 조금씩 메모하는데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인 한방이 없었다.
대천천으로 금정산성을 오르기 위해 화명역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오른쪽에 감성카페가 보이기에 커피를 한잔 주문하러 들어갔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고는 이거다 싶었다.
성공해라 성공하면 너의 개소리도 명언이다. 천억이 있으면 꼰대의 라떼도 가르침이라고 떠받들어준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나 내 인생의 목표는 부자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세상에 알리고 남기고 싶은 무언가 있다. 그것이 통장잔액이나 투자비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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