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대작

낙타 2026. 3. 13. 11:08

초봄의 기운이 완연한 4월의 월요일 아침입니다. 출근 준비로 바쁜 와중에 딸아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딸 : 빠. 잠깐만.
빠 : 왜?
딸 : 나 왜 이렇게 예쁘?
빠 : ... 내가 낳았지.
딸 : ...
빠 : 아버지 어머니 예쁘게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봐.
딸 :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아~
빠 : 태도가 맘에 안드네?
딸 : ㅎㅎㅎ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딸이 다시 말을 겁니다.

딸 : 옷 이쁘지?
빠 : 응. 힙하네?
딸 : 오~. 아빠가 힙을 알아? 엉덩이 말고.
빠 : 월요일 아침부터 불쾌한데?
딸 : ㅋㅋㅋ

어느덧 저녁이 되고 치맥을 즐기며 대화는 깊어집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 질문이 빠질 수 없습니다.

딸 : 아빠 T야?
빠 : (사람의 성격은 단순하지 않고 다층적인 거란다... 라는 말을 꾹 누르고) 그래. 아빠는 대문자 T야.

딸은 숨이 넘어가게 웃습니다. 사실 저는 소문자 u (Humor) 아빠일지도 모릅니다.


밤 12시가 되었습니다. 치킨과 맥주를 사이에 두고 진지한 인생 철학이 오갑니다.

딸 : 아빠는 미니멀리즘이야 맥시멀리즘이야?
빠 : 기본 성향은 미니멀리즘인데 부분적으로 맥시멀리즘이야.
딸 : 부분적으로 맥시멀리즘이 어떤 부분이야?
빠 : 맛있는 거?
딸 : ㅇㅋ 인정. 또?
빠 : 돈?
딸 : ㅇㅋ 당근이지. 그것도 인정. 또?
빠 : 시간?
딸 : 낮잠 잘 자는 사람이 뭔 말이야.
빠 : 바로 그거지. 낮잠 잘 시간.
딸 : ㅋㅋㅋ 또?
빠 : 딸하고의 추억?
딸 : 의외네. 자기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ㅎㅎㅎ

욕심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딸과의 추억을 맥시멀로 쌓고 싶은 것은 모든 아빠의 본능입니다.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킵니다. 맥주 기운이 적당히 올라온 시간입니다.

딸 : 저 소주는 머임? 출처는?
빠 : GS25.
딸 :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빠 : GS25가 출처 맞아.
딸 : 헐...

딸은 갑자기 고민에 빠집니다.

딸 : 아빠. 나 머리 감을까 말까?
빠 : 새벽 3시에?
딸 : 그러니까.
빠 : 그냥 자.
딸 : 머리 냄새 많이 나? (머리를 아빠 코에 들이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 : 으... 아빠 코 썩는다.
딸 : 그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빠 : 아빠 코썩 어쩔 거야.
딸 : ㅍㅍㅍㅍㅍㅍㅍㅍ

딸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깁니다.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심야의 부녀 대작은 그렇게 무르익어 갑니다.
4월의 첫 주를 무사히 보내고 둘째 주를 기다립니다. 매주를 이런 설렘으로 맞이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묘미입니다. 치킨과 맥주 그리고 딸아이와의 대화가 있다면 그것으로 완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