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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걷다

영화 미나리. 할머니의 힘을 발견하다

by 낙타 2021. 3. 10.

영화 할머니, 아니 '미나리'가 화제입니다. 희망을 찾아 미국 아칸소주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이민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호평을 받고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의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으며, 전미은퇴자협회에서 미국 어른을 위한 영화로 선정되고 최우수세대통합상을 주었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무려 상을 75개나 받았고 윤여정씨가 받은 상만 26개라니 상복이 터졌네요. 오스카상에서 주제가상과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에 미나리의 한예리씨가 오르기도 한다니 기대가 큽니다.


유튜브에서 영화 감독과 출연진들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놀라며 극찬... 이 부분은 그러려니 하세요.

 

사회자가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을 grandma 가 아니라 '할머니'로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한국어 '할머니'가 영어의 grandma가 아닌 별개의 단어가 되었다는 기사가 실감 납니다.

할머니. 이렇게 부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랑을 다 줄 것 같은 엄마와는 또 다른 느낌이네요. 흔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모와는 달리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없기에 더 관대하고 조건없는 애정을 보인다고 합니다. 애들 버릇 나빠지게 하는 큰 원인이죠. ㅎㅎ 하지만 그게 다일까요? 무엇이 할머니가 grandma와 다르게 느껴진 것일까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 70대나 80대 일겁니다. 60대를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르면 화내실 겁니다. 손자 손녀가 있더라도요. 그 세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해 볼까요. 1930년대나 1940년대, 늦어도 1950년대에 태어난 우리 할머니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 2차 세계대전, 해방과 그 이후의 혼란기, 6.25전쟁, 폐허가 된 땅에서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 경제발전 시대의 피눈물을 겪으며 이후의 민주화 시기 등을 거쳐서 이제는 스마트폰을 일상으로 쓰는 경제대국의 시대까지 살아왔습니다. 와우... 정말 대단한 시대를 거쳐왔네요.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겪은 세대가 있었을까요. 이처럼 대단한 일을 이룰 세대가 또 있을까요?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서 주인공 민수는 자기들의 세대가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갖춘 세대라고 말합니다. 외국어 한두개는 기본이고 악기 하나 정도는 다들 연주할 수 있는 세대인데 왜 이렇게 살기 힘드냐고 합니다. 젊은 세대의 고달픔을 잘 묘사해서 저도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이 소설이 2007년을 배경으로 2007년에 쓰여졌는데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은 스펙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화려한 능력을 갖춘 것은 너희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이전 세대가 지금 세대보다 부족해서 그런 스펙을 갖추지 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젊은이들의 휘황찬란하고 다재다능함은 너희 부모들의 업적이다. 단군 이래 최고로 자식을 잘 먹이고 잘 키우고 잘 교육시킨 부모들의 자랑이다... 라고요. 네. 그렇게 한 세대가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그 억척스러움이, 그 강인함이, 그 자식과 손자녀에 대한 사랑이 할머니를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소개해 드릴 책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입니다. 제목도 그렇게 표지도 좀 민망합니다만 이 책은 여성의 몸,  심리나 사회, 역사적인 부분까지 최신의 생물학 이론으로 탐구합니다. 우리가 여자의 몸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여성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여성의 몸과 마음을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합니다. 이 책의 다루는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서 한 챕터만을 따와서 글을 쓰는 경우가 자주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13장. "악명과 같은 것은 없다 어머니, 할머니, 조상들" 중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가정이나 부족 등의 생존에는 할머니의 역활이 큽니다. 할머니는 출산을 하지 못하고 신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므로 가정이나 무리의 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인류학의 증거에 의하면 어린 아이들의 생존은 할머니의 존재 여부에 의해서 상당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수렵 채집을 하던 시대는 우리의 생각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적은 노동으로 충분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남성의 사냥은 중요성이 덜 했습니다. 사냥은 그다지 적극적인 사냥도 아니었으며 작은 짐승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짐승의 사체나 다른 동물이 먹고 남은 것을 주워오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채집에는 여성이 주요한 역활을 했으며 폐경기가 지난 할머니의 역활도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정이나 무리에 위기가 닥쳤을 때, 즉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성인들이 다수 사망했을 경우는 힘센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있는 것보다 할머니가 있는 경우의 손자 손녀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머니 효과'라고 합니다.

심지어 범고래의 경우에도 이런 결과가 있습니다.

범고래: 새끼 고래 생존율 높이는 할머니 고래의 역할 - BBC News 코리아 -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0724335.amp

할머니 범고래가 살아 있으면 손주 고래들의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할머니 범고래의 폐경기를 지난 경우, 손주들의 생존율은 훨씬 높았다.

역시 할머니가 최고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할아버지들 자식 사랑이 그보다 못하지는 않지요. 저희 아버지 생전에 손자를 애지중지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주는 영상 하나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