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낙타 2021. 3. 29. 02:46

워싱턴 포스트가 2020년이 어떤 해였는지 짧게 표현해보라고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했다. 1등은 9살 소년이 쓴 글이었다.

"양쪽을 잘 살피며 교차로를 건너고 있었는데 잠수함에 치인 것과 같은 한 해였다."

대단한 표현이다. 크게 될 듯.

현대 문명은 거대한 성채를 쌓아올리며 어떤 위협에도 굳건한 난공불락인 것 같다. 적어도 자기들끼리 핵무기를 쏴 대거나 외계인이 침략하기 전에는. 하물며 예전에 물리친 조그만 바이러스가 다시 치명적인 역습을 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바이러스는 화성인들이 침공할 때에 효과적인 우군일 줄 알았다. DNA까지 파헤치는 기술과 의학은 이제는 흑사병이나 천연두 콜레라 따위도 물리칠 것 같았다.

성채를 쌓아올린 인류는 바이러스 쯤은 막아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위험성은 지적되었다. 오늘날의 치명적인 위험은 현대 문명 자체다. 놀라운 속도로 여기저기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기술과 밀집한 대도시의 생태계는 전염병의 위험성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증대시킨다. 과거에는 인간의 느린 이동 속도로 인해 전염병의 전파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중국에서 나타난 바이러스가 며칠 후에는 전세계에 퍼질 수 있는 기동력을 제공했다.

처음에 괴상한 독감이 퍼지고 있다고 할 때는 이렇게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1919년 12월 말에 첫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은 2021년 3월 현재까지 15개월 째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리고 아마 연말까지는 이 영향력 아래서 살아야 할 듯하다.

[포스트 코로나 :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 책의 출판은 2020년 5월 15일이다. 아직 한국에서 코로나의 심각성을 느끼기 이전, 나름대로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고 여길 때에 나온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2021년 3월의 상황에서 볼 때는 낙관적인 부분도 적지않게 있다.


코로나팬데믹은 인간 사회에 변화를 요구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미래에 대한 태도 등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의와 공평성이 무엇인가, 젊은이와 노인 중에 누가 중환자실을 차지해야 하는가? 기본소득은 정당한가?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10만원을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저소득층에게 20만원을 주는 것이 나은가? 우리는 이제 회사 건물이 아니라 집에서 근무하게 될 것인가? 코로나19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전통적인 한국형 경제 성장모델은 앞으로도 성공적일 것인가?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될까? 집 값은 오를까 내릴까?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앞으로도 사람들을 악수를 할까? 마스크는 언제까지 쓰게 될까? 한국의 보건체계는 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을까? 앞으로 보건 의료는 어떤 방향으로 변하게 될까? 정치는 또 어떻게 될까? 국제 사회는? 온라인 교육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학교나 대학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등록금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러한 질문들까지 동반해서 우리를 후려치고 있다.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더 복잡해지지만 이 정도로 해 두자.

답은? 답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2020년 5월에 나온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난 이 책이 언제 나온지 모르고 골랐다. 도서관에서 찬찬히 책을 고를 시간이 없을 경우에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적당히 몇권 고르거나 혹은 반납대를 쓰윽 살펴보고 그 중에서 몇권 얼른 골라서 나오는 거다. 이 책은 반납대에 놓여있기에 집어든 책이다.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책들을 우수수 내놓고 있는데 이 책의 기획자는 상당히 발이 빨랐다.

그래서 답은? 사실... 모르겠다. 저자들도 이거다하고 자신있게 답을 제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과 집값이 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이라도 속시원히 알려주면 좋겠지만 저자들은 [예상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 시나리오]라는 것을 제시한다. 그래서 집값이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는 모르겠다.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은 두 부류다. 예언자와 미래학자. 그럼 점쟁이는 자기가 모시는 신이나 영적 능력에 의지하고 미래학자는 과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누가 더 잘 맞출까? "미래학자의 예측은 침팬지만도 못하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을 분석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에 나오는 말이라고 이 책에 나온다. 사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주가 예측은 원숭이들이 제일 잘하고 월드컵 우승팀 예측은 문어가 제일 잘한다.

2010월드컵에서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Paul)은 8번의 경기 결과를 모두 맞추었다. 축구황제 펠레는 1번을 맞추었다. 정말이지 숙회로 먹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미래에 대한 예언(?)은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는 지난 주말에도 날씨를 잘못 예상해서 욕을 먹은 일기예보가 있고 이번주 토요일에 있을 로또 번호를 안다는 인터넷상의 현자들이 있다. 아니. 로또 당첨 번호를 알 수 있으면 자기가 로또를 살 것이지 그것을 남들에게 가르쳐주는 바보가 있다니. 그리고 그걸 믿고 돈을 내는 똑똑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주식 종목을 예측하는 전문가에서부터 미래학자까지. 이 세상은 예언가들의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내가 본 가장 어처구니 없는 미래 예언은 몇 억년 뒤의 인류 진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걸 누가 살아서 지켜볼 것도 아니고.


이제 두가지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것을 먼저 말할까... 라고 하고 싶었지만 세상만사가 그렇게 단순명쾌할리가.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나쁜 소식인지 좋은 소식인지 헷갈리는 것이 있는데 무엇을 먼저 말할까? 응?

첫번째 소식.
코로나는 모든 것의 원흉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에 예측되는 변화의 모든 원인이 바이러스가 아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이것들은 코로나로 인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다. 이 모든 변화들은 이미 그러리라고 예측되어 온 것들이다. 언택트와 온라인은 이미 하나의 흐름이 되어 있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읽어보라. 아마 언택트니 온라인이니 하는 흐름이 대세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각 부면에서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갈 것이라고 모두가 예측하던 것들이다. 그러니 코로나바이러스는 억울하다. 금융이나 산업계의 문제들은 이미 오랫동안 빚으로 곪아가던 종기가 약간의 충격에 의해서 터져버린 것이다. 부동산? 언제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가? 코로나는 약간의 가속페달 역활을 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식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

다음 소식.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인간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빈곤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것인가? 어떤 지역으로 부가 집중될 것인가? 과학이 인간의 생활양식, 인간과 고통, 인관과 죽음의 관계, 교육, 오락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사람들은 어떤 야망과 어떤 모험에 인생을 걸 것인가? 전쟁과 환경 재난이 인간을 위협할 것인가? 자유와 연대, 이동과 정착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 종교인과 정치인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떠한 관습이 용인될 것인가? 서양문명이 여전히 지배적인 문명일 것인가? 미국은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할 것인가? ... 시장과 민주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존재할 것인가? 아직도 혁명이 가능한가?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자크 아탈리가 1998년에 발간한 [21세기 사전]이라는 책에서 다가올 새천년을 두고 던진 질문들이다. 
21세기가 열린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같은 질문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같다. 

이 질문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도 그다지 변화없이 통용될 것이다. 코로나의 충격은 이 세상의 근본질서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상되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낼 것이고 - 그 답이 정답이든 오답이든 - 심지어 답지를 공백으로 제출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기업들의 흥망성쇠? 언제는 흥하는 기업과 망하는 기업이 없었나? 농사만 짓고 사는 사회에도 흉년과 풍년이 있고 농사가 잘된 지역이 있고 흉작인 지역이 있는데. 세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리고 역시나 피곤한 상태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이 소식은 좋은 소식일까 나쁜 소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