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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걷다

통영 그리고 시인 백석의 첫사랑

by 낙타 2021. 1. 18.

2021.01.11 - [책과 글] - 통영 중앙시장 활어시장에서
에서 이어집니다

 

통영 중앙시장 활어시장에서

연말에 통영에 다녀온 후기를 이제야 씁니다. 새해에는 좀 부지런해지기로 결심했건만. 오랜만에 길을 나서 봅니다. 목적지는 통영. 고향이 고성이라서 통영은 익숙하면서도 음식도 입맛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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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을 주문하고 앉았는데 식당 벽에 백석의 시 '통영'이 걸려 있습니다. 여기는 거제도인데?

백석은 통영이라는 제목으로 세편의 시를 썼고 창원도. 고성가도. 삼천포라는 제목의 시도 있습니다.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고향의 토속어들로 생생한 시적 감성을 보여준 그가 머나먼 통영과 무슨 인연으로 여러 편의 시를 썼을까요?

백석은 24살에 통영 천희 - 처녀. 제 기억으로 고향인 고성에서는 처이 , 처니 혹은 처늬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백석은 왜 천희라고 했을까요? 경상도 사투리가 낯설었던 백석이 처이, 처니를 천희로 듣고 사람이름으로 착각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박경련을 만나서 한눈에 반합니다. 첫사랑이죠.

란. 박경련.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 하였습니다.
- 편지 중에서. 백석.

백석은 난을 만나기 위해 통영을 방문합니다. 둘이 만난 일을 백석은 시로 기록했습니다.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 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통영. 백석

백석은 다시 통영을 방문하지만 길이 엇갈려 난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 통영. 백석

이글 1에서 인용한 시의 뒷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왔지만 만나지 못하고 물을 긷는 여자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까 싶어 충렬사 계단에 앉아서 울 듯 울 듯하는 백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 시에 나오는 명정샘은 지금도 통영 명정동에 있습니다. 명정샘 이야기는 좀 있다 다시 하지요.

명정샘

충렬사에서 바라본 명정샘과 백석 시비. 오른쪽 모퉁이에 명정샘이 있고 왼쪽 모퉁이에 백석 시비가 있다

1936년 12월에 친구 신현중과 세번째로 통영을 방문해서 난의 부모에게 청혼을 하는데 어이없게도 이 일은 신현중이 난과 결혼하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신현중이 백석의 가난한 형편과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는 소문을 전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청혼을 하여 승낙을 받고 결혼 합니다. 친구와 연인을 한꺼번에 잃은거죠. 이런 일 흔하잖아요.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내가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백석

통영이라는 제목의 세번째 시는 난의 외사촌이자 자신이 통영에 갔을 때 대접해준 사람에게 쓴 형식입니다.

이 후에 백석은 억지로 떠밀리듯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또 '자야'와의 사랑도 하게됩니다. 하지만 백석은 1941년에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이렇게 씁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백석.

개포가의 집에서 대구국을 끓여먹는 어여쁜 사람이란 난을 말하는 것이겠죠. 첫사랑을 잃은 쓸쓸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렇겠죠. 백석이 계속해서 이렇게 쓰는 이유는...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백석

명정샘과 충렬사 사이에 백석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통영 출신이 아닌 시인으로서는 처음이라네요.

백석 시비.

박경리와 김약국의 딸들. 그리고 통영에 대해서도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줄입니다. 다음에 흥이 나면 또 재미없는 긴 글 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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